나쁜 놈들 쳐다만 보는 나 자신 혐오
잘못된 선택 인정해야 나아갈 수 있어

그러고 싶은 건 아닌데 자꾸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진다. 어떤 분이 SNS에 드라마 속 대사라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원래 나쁜 놈은 수두룩 뻑뻑하다. 그런데 새로 나쁜 놈이 생기면 원래 나쁜 놈은 잘 보이지도 않고 다들 새로 나타난 나쁜 놈만 죽어라 욕한다.' 인정한다. 그런데 원래 나쁜 놈들이 날뛰는 게 더 밉다. 왜? 그게 어떤 건지 해 봐서 잘 알고 더 날뛸 테니까.

그렇게 나도 남의 일인 양 어쩌구저쩌구 하고 끝났으면 좋을 뻔했다. 이번에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져서 아프다. 이런 와중에도 '너희 둘 다 나쁜 놈이야' 하고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냉가슴만 앓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 싫어하고 미워함. 사춘기도 아니고 이 무슨 유치한 시추에이션인가. 유치해도 한번 스스로를 혐오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부분만 보일 때는 잘하고 좋은 점이 커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로 보거나 조금만 떨어져서 보고 생각하면 이것저것 흠이 많다. 불완전한 존재니까.

자신을 혐오하는 병에 걸린 원인은 '인지 부조화'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학생을 대상으로 '아주 중요한 실험을 할 거'라고 공고를 내놓고는 별 볼 일 없는 실험을 하게 했다. 그 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은 1달러, 다른 쪽은 20달러를 주고는 다음 지원자에게 정말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고 거짓말해 달라 부탁했다.

20달러를 받은 학생들이 실험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것 같지만, 예상과 달랐다. 적은 돈을 받은 학생들이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단돈 1달러를 받고 말도 안 되는 실험을 재미있었다고 거짓말하는 일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실험이 실제로 어느 정도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다고 믿어 버렸고, 자기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도 믿었다.

사람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자꾸만 그 선택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믿으려고 한다.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 후에도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서 끝까지 자신이 맞다고 우기고 싶어 한다. 객관적인 결론보다 자신이 믿었던 쪽을 선택하는 태도는 '인지 부조화'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인지 부조화'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자신의 어리석음을 감추며 살아갈 수 없다. 그런 자신을 혐오하며 길게 살아서야 이번 생이 무의미하다. 빨리 치료해야 한다. 실수라면 줄여야 한다.

거창하게 시대에 따른 임무를 다하자고 말하기 싫다. 요즘 사람들은 한데 엮어서 말하거나 여럿이 함께 하자고 하면 싫어한다. 각자 잘났고 개별적으로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내 안의 나를 지킨다면서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신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자신을 살짝 들어서 치워보자. 인지 부조화로 감춰 놓았던 자신의 실체를 마주하면 된다.

가끔 거울을 보면 낯선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처럼 '인지 부조화' 너머에 있는 자신, 적어도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해 틀린 것을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신념화하지 않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자. 그렇게 만난 자신을 데리고 와서 다시 살면 된다. 혹여 너무 오랜만이어서 서먹할지는 몰라도 그런 사실조차 인정하면 가능하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아가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세상의 주체인 자신이 혐오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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