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부산·대만 오가며
과거 무력충돌 비극 담아
로드무비 형식 다큐 제작

오민욱(34) 감독의 <해협>(2019년)은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오 감독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잔잔한 입술, 생각 많은 눈빛으로 기억하는 이다. <해협>은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기록이라는 느낌보다는 매 장면이 어떤 생각의 조각들 같은 영화다. 현대문학 전공자라고 밝힌 한 관객이 <해협>을 보고 '함축적이고 지적인 화면들'이라고 표현한 것도 비슷한 이유겠다.

▲ 다큐 <해협>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 다큐 <해협>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동아시아 전쟁 이야기를 담다

구체적으로 <해협>은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을 다룬 일종의 로드무비다. 오 감독은 동아시아 지역 전쟁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고 한다. 2015년 완성해 그해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그의 직전 영화 <범전>(2015년)이 2016년 대만 사우스타이완영화제에 초청 받는다. 그 영화제 매니저였던 대만인 샤오 카이츠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을 시작한다. 실제 샤오는 영화를 만드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영감을 준 것은 물론 대만 촬영을 도왔으며, 영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인 내레이션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화는 1958년 진먼다오(금문도·金門島) 포격전 취재를 위해 대만으로 향했다 목숨을 잃은 한국일보 최병우 기자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만보다는 중국 대륙에 속한 섬인 대만령 진먼다오는 중국 국공내전의 최전선으로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몇 번이나 무력충돌이 벌어졌던 곳이다. 무력 충돌이 사라진 지금은 그 파괴의 흔적들이 반대로 관광 상품이 됐다. 진먼다오 충렬사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안치된 최병우 기자는 오 감독에게 전쟁과 관련해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영화는 이렇게 교토와 부산, 대만을 오가다 결국은 일본 도쿄에 있는 히로히토 일왕의 무덤 앞으로 수렴되는 형식이다. 일왕 무덤 장면은 오 감독이 가장 찍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다. 그가 보기에 일본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천황제야말로 바로 동아시아에 전쟁이 일어난 핵심 원인이다.

▲ 오민욱 감독. /이서후 기자
▲ 오민욱 감독. /이서후 기자

전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지만 <해협>에는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다. 오 감독이 보기엔 지금도 동아시아인의 기저에 흐르는 정서는 불안이다. 이 불안에서 '설마 전쟁이야 일어나겠느냐'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고, 그것이 지금의 표면적인 평화시대를 이룬 것이다. 불안에 기초한 평화, 이것이 오 감독이 보는 동아시아다. 또 한 가지, <해협>은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물귀신이 된 자들을 위한 진혼곡 같기도 했다.

"지도를 보시면 한반도, 중국, 대만, 일본 사이에 바다가 넓습니다. 전쟁기간에 많은 분이 이 바다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형체조차 찾을 수 없는 그분들의 형상을 영상에서 그리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해협에서 죽은 이들을 찾고, 그들을 생각하고, 때로 그들을 불러내어 위로한다. 영화에서 대만 진먼다오 도사(道士)의 진혼 의식, 부산 범어사의 장례 의식, 교토의 기온마쓰리 축제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오 감독은 부산 지역 감독이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에도 부산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오 감독이 샤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나오는 부산 남구 용호동에 있는 이기대에 대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점령한 왜군들이 축하연을 벌이면서 조선 기생 두 명에게 왜장의 시중을 들 게 했는데, 이들이 술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이렇게 지역 이야기라도 세계사적 맥락과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오 감독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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