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성행한 전통 탈놀음 경남선 '오광대'명명·전승
거제서 태동한 영등오광대 제의 양식에 무당 등장 등 해안지역 사회 특성 반영

◇양반이 양반풍자 장려 아이러니

말뚝이 "쉬이~ 너희들이 양반이라 자랑하니 양반 근본을 좀 들어보자."

원양반 "미천한 네 놈이 양반 근본을 알아 무엇하리."

말뚝이 "하하하 그럼 그렇지. 아니 일러 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산 지도 수십 년이라 너 그 근본을 모를쏘냐. 내가 일러줄 테니 들어보아라. 첫째 양반 너를 두고 말하자면 양반의 집안이라 자랑은 하지마는 니 에미 애비가 괴기를 팔아 그 돈으로 양반을 샀으니 니가 무슨 양반이라 자랑이냐?"

오광대놀음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말뚝이 마당이다. 이 장면이 전체 과장 중에서도 가장 짜릿한 이유인즉슨, 당시 시대 상황이 돈을 주고 양반을 사고 양반 사회의 문란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비위에 백성의 고혈은 더 짜내려 해도 나올 것이 없던 시절이라. 이러한 때에 광대패들이 오광대라는 시대 풍자극을 들고나와 천하를 주유하며 큰 장이 서는 곳마다 찾아가 놀아보는데, 아따 양반님네가 돈뭉치를 툭 던져주며 "너희들 여기 와서 놀아봐라" 하고 초청공연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양반네 초청공연에서 양반을 풍자하는 말뚝이 장면이 가감 없이 펼쳐지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거니와 이를 구경하는 백성들의 속은 또 얼마나 시원했겠으랴. 조선 후기 사농공상이 무너져내리는 시대였긴 했어도 집권세력 시각으로 보면 이런 싸가지없는 공연 나부랭이야 얼마든지 탄압해 소멸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몇몇 양반네들은 돈까지 줘가며 광대들 공연 활동을 장려하였으니 선조들의 문화사랑 그 여유를 짐작하겠다.

◇경남의 오광대 탈놀음 유래

오광대라는 말은 경남지역에 분포한 탈춤, 탈놀이를 두고 이름이 붙여졌다. 합천 밤마리오광대부터 진주오광대, 가산오광대, 창원오광대, 마산오광대,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거제영등오광대, 거제오광대, 김해오광대, 가락오광대 등이 있다.

경남을 벗어나 오광대와 유사한 놀음을 보면, 부산으로 넘어가 동래야유, 수영야유 등 야유(들놀음)라는 이름으로 연희가 이루어졌고 산대도감이 인조 이후 폐지되면서 본산대 서울과 별산대가 있었던 경기 쪽에는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로 펼쳐졌다. 황해도 해서지역에서는 은율탈춤, 봉산탈춤, 강령탈춤 등 탈춤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었으니 탈놀음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정착하고 전승되었다 할 수 있겠다.

경남의 오광대 역시 큰 틀에서야 대여섯 가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과장의 구성과 탈의 모양, 재료 등으로 들어가면 제각각 지역에 맞는 특성을 보이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경남의 오광대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낙동강 홍수 때 큰 궤 하나가 밤마리 앞 언덕에 닿았는데 열어보니 탈과 기타 탈놀이 기구가 들어 있었다. 처음엔 모두 손 대기를 꺼렸는데 인연이 있어 닿은 것이니 탈놀이를 해야 한다고 하여 놀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인지 오광대의 시작이 밤마리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문헌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다만 탈춤 등 연희를 담당했던 산대도감의 해체에 따라 구성원들이 각지로 흩어져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경남으로 와서는 오광대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다는 점은 공히 인정하는 부분이다.

◇거제영등오광대

한동안 '학산오광대'라는 이름으로 연희되었다가 원래의 이름 '영등'을 되찾아 현재 11회 정기공연에 이르고 있다. 지난 13일 독봉산 웰빙공원에서 판을 벌였다. 거제영등오광대는 섬과 해안이라는 특징이 잘 드러난다. 대표적인 게 5과장에서 무당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는 어로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일상의 굿이 탈춤에 반영된 것이다. 영등오광대의 또 다른 특징은 문둥이마당에서 문둥이가 흑백 두 명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상반된 인간 내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등오광대의 시작 시점은 1900년대에 연희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30년대 영등에 살았던 노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말뚝이가 양반을 풍자하고 큰각시가 오줌 눌 때 키를 부쳤다고 하니 대체로 통영오광대와 비슷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영등오광대는 5과장으로 이루어졌다.

▲ 영등오광대는 여타 오광대처럼 '오방신장무'부터 시작한다. /정현수 기자
▲ 영등오광대는 여타 오광대처럼 '오방신장무'부터 시작한다. /정현수 기자

△1마당: 오방신장무-오방이란 다섯 방향 즉 동서남북과 가운데를 가리키는데 다섯 명의 신들이 나와 굿거리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거제 영등에선 뱃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별신굿의 영향을 받아 탈을 쓰고 부정함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당으로 풀이한다.

▲ 제2마당인 사자포수과장 연희 모습. /정현수 기자
▲ 제2마당인 사자포수과장 연희 모습. /정현수 기자

△2마당: 사자포수과장-작은 사자 두 마리가 먹이 다툼을 하고 있을 때 큰사자가 나와 그중 한 마리를 잡아먹고, 이 사자가 또 놀고 있을 때 포수가 나와 큰사자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이는 약육강식을 풍자한 것으로 잘났다고 자랑 말고 이웃과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놀이마당이다.

▲ 제3마당인 문둥이과장 연희 모습. /정현수 기자
▲ 제3마당인 문둥이과장 연희 모습. /정현수 기자

△3마당: 문둥이과장-문둥이과장은 양반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죄의 대물림을 한탄하며 탈춤으로 한을 풀어가는 마당이다.

▲ 제4마당이자 오광대 놀음의 백미인 말뚝이과장 속 말뚝이. 양반들의 하인이면서도 오히려 양반에게 호통치는 말뚝이 모습에서 당시 시대상과 민초들의 풍자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정현수 기자
▲ 제4마당이자 오광대 놀음의 백미인 말뚝이과장 속 말뚝이. 양반들의 하인이면서도 오히려 양반에게 호통치는 말뚝이 모습에서 당시 시대상과 민초들의 풍자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정현수 기자

△4마당: 양반말뚝이과장-양반말뚝이과장은 풍자놀이로 양반이 아닌 양반들이 더욱 양반 행세하며 이웃을 괴롭히는 것을 보다 못한 진짜 양반인 말뚝이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가짜 양반들을 혼내주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 제5마당 영등할미과장. 처첩 갈등과 가장의 책임 문제를 직설적이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정현수 기자
▲ 제5마당 영등할미과장. 처첩 갈등과 가장의 책임 문제를 직설적이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정현수 기자

△5마당: 영등할미과장-영등할미과장은 처첩 갈등을 그린 마당이다. 영감이 객지에서 작은 각시를 얻어 집으로 돌아와 자식을 낳는다. 이 아기를 두고 큰각시와 작은각시가 싸우게 되는데 그 와중에 영감이 아기를 받아들고 보니 자기 자식이 아님을 알고 그 충격으로 쓰러져 죽는다. 한 가장의 잘못으로 가정이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려 교훈을 주고 있다. 영등오광대는 상여소리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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