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털이 일당 각자 흩어질 때 흐르는 드뷔시 '달빛', 꿈결 같은 느낌 선사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범죄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를 아름답게 포장한 영화들이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으며 관객의 발길 또한 끊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인가? 분명 남의 것을 탐하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배워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자신의 것을 불합리한 이유로 다른 이에게 빼앗긴 채 살아간다는 피해의식에 의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언젠가는 그것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영화 <이탈리안 잡>, 그리고 제목마저도 노골적인 <도둑들> 같은 영화가 인기다. 그리고 언젠가 임꺽정과 같은 이가 나타나 잃은 것을 되찾아 줄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또한 모를 일이다.

◇금고털기 프로젝트

갓 교도소를 출감한 주인공 대니(조지 클루니), 그는 자유를 얻은 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 엄청난 범죄를 계획한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금고 털기. 그것도 사상 최대 규모로 1억 5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거대한 프로젝트이기에 혼자서는 성사시킬 수 없는 노릇. 그는 러스티(브래드 피트)를 비롯해 거사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섭외한다.

총 11명으로 이루어진 일류들. 하지만 이러한 거금을 보관해야 할 금고의 보안이 만만할 리 없다. 지하 200피트, 12시간마다 바뀌는 암호, 이도 모자라 지문인식 시스템과 적외선 감시망이 가로막고 있으며, 이를 무너트린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음성인식장치라는 첨단장비와 무장경비까지 뚫어내야 하는 것이다. 하니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모자랄 판국이 하나씩 꼬이고 이를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그들이지만 이제 작전의 사령관이라 할 대니의 속내가 의심스럽다. 그들이 노리는 카지노의 주인이자 냉철한 사업가 테리에게는 테스(줄리아 로버츠)라는 애인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대니의 전처인 것이다. 꿍꿍이가 의심스러울 만도 한 상황. 하지만 그들은 예정대로 계획을 준비해 나간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며 장면들을 끌고 가지만 영리하게도 정작 가장 궁금하다 할 어떻게 그 많은 현금뭉치를 금고에서 빼 나갈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자! 이제 금고털이 어벤저스는 출동준비가 끝났다. 세기의 권투시합이 예정된 라스베이거스의 밤, 과연 이들은 최고의 경비시스템을 뚫고 무사히 그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들어간다 해도 그 많은 돈뭉치를 어떻게 운반할 생각인가? 그리고 주인공 대니는 과연 사랑 없이 돈만 좇는 냉혈한으로부터 사랑하는 테스를 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

▲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적인 권투시합이 열리는 밤, 3개의 카지노를 동시에 털 계획을 세우는 오션스일레븐 멤버 (사진 왼쪽부터)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 라이너스 캘드웰(맷 데이먼), 루벤 티쉬코프(엘리엇 굴드), 배셔 타르(돈 치들)./스틸컷
▲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적인 권투시합이 열리는 밤, 3개의 카지노를 동시에 털 계획을 세우는 오션스일레븐 멤버 (사진 왼쪽부터)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 라이너스 캘드웰(맷 데이먼), 루벤 티쉬코프(엘리엇 굴드), 배셔 타르(돈 치들)./스틸컷

◇인상주의 대표작곡가

혼을 빼놓듯 긴박하게 돌아가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임무를 수행하느라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던 오션스 일레븐, 그리고 그것을 눈으로 따라가느라 지친 관객들에게 이제는 그만 긴장의 끈을 놓고 쉬라는 듯 몽롱한 듯 지극히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 듣다 보면 이 모든 사건들이 꿈이었나 싶기도 하다. 경찰에 체포된 대니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든 곳, 그곳에서 그들은 아름다운 분수쇼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이 없다 하나씩 자리를 떠난다.

이전의 팽팽했던 긴장감과 대비를 이루듯 평화로운 이 장면에서 흐르던 꿈결 같은 선율,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이다.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작곡가 '드뷔시'. 그렇다면 먼저 인상주의란 무엇일까? 화가 '마네', '모네', 그리고 '르누아르'로 대표되는 회화의 양식 인상주의. 그 명칭을 얻게 된 계기는 찬사가 아니라 신랄한 비판에서 비롯되었음을 아시는지.

때는 1874년 4월, 한 전람회에 '인상, 일출'이라는 작품이 출품된다. 이 작품은 화가 모네의 것으로 프랑스 인상주의 회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기자 르루아가 이들 작품을 조롱하려 사용한 호칭을 그들은 쿨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인상주의는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는 데 노력한 이전의 화풍에 과감히 반하여 빛과 그림자를 중시한 풍경에 눈을 돌렸다. 이는 사물을 정확히 묘사하기에 적합한 사진의 발명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제 미술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 특징으로는 모호함과 순간의 감각적 환상과 상상력, 그리고 빛에 의한 찰나적 인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회화 경향의 음악적 전환에 가장 탁월했던 작곡가가 바로 드뷔시인 것이다. 교향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이러한 인상주의의 색채적 기법을 음악적 기법으로 가져온 그의 첫 번째 작품으로 여겨지며 이 작품은 현대음악의 출발에서 중요한 시작점으로 평가받으니 들어볼 일이다. 또한 영화에 흐르는 '달빛'은 그러한 그의 작풍이 아직은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초기 작품이기는 하나 인상주의적 요소를 가득 담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창작 후 15년이 지나 세상에 내놓게 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수정이 가해졌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실로 프랑스적 에스프리가 가득한 명곡 달빛은 이렇게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 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며 그 3번째 곡으로서 전곡보단 단독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겠다.

▲ 대니 오션이 전 부인 테스 오션(줄리아 로버츠·사진 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틸컷
▲ 대니 오션이 전 부인 테스 오션(줄리아 로버츠·사진 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틸컷

◇조성진과 드뷔시

'프렐류드', '미뉴엣', '달빛', '파스피에' 이 네 개의 곡으로 구성된 베르가마스크 조곡은 드뷔시가 젊은 시절 이탈리아의 베르가모 지역을 여행하면서 받은 느낌을 곡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앞서 얘기했듯 지극히 프랑스적 감성이 충만하며 만연한 색채감과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명작이다.

가장 유명한 세 번째 곡 '달빛(Clair de lune)'은 특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으로 아마도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월광'의 제1악장과 함께 달빛을 가장 절묘하게 묘사한 음악으로 꼽을 수 있는데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에 의해 편곡된 관현악 버전 또한 콘서트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클래식에 있어 필청 곡인 것이다.

곡의 매력이 이렇다 보니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가난한 소년의 성장담을 아름다운 화면에 담아 보여준 베트남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뱀파이어와 인간 소녀의 동화적 사랑을 다룬 영화 <트와일라잇>에서도 이 곡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명성으로 인해 녹음 역시 많아 음반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듯하지만 사실 모음곡 전곡 음반은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에 고전적인 명연 '기제킹'의 음반(EMI)과 프랑스적 감흥이 가득한 '파스칼 로제'의 음반(ONYX)이 추천되는 가운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피아니스트로 '조성진'을 자신 있게 언급할 수 있게 된 것은 즐거운 일이다.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놀라운 행보를 보이며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거듭난 그가 클래식 레이블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도이치그라모폰(DG)과 손을 잡고 이루어낸 두 번째 정규녹음. 그가 선택한 작곡가는 드뷔시이며 그 결과물은 놀랍다. 좋은 연주란 곡이 지닌 아름다움을 잘 안내하는 연주라는 것은 늘 주장해 오던바, 그의 연주는 화성적 모호함으로 그 특징을 말할 수 있는 인상주의 음악이 지닌 독특한 매력을 너무도 잘 보여주었기에 그렇다. 작년 클래식 음반시장에서의 놀라운 판매량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음반을 올리는 순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어느새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어머, 이건 꼭 들어야 해' 음반이다.

인간의 발자국이 찍힌지 이미 오래되었음에도 달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오드리 헵번이 발코니에 앉아 그토록 애절하게 그리워하며 노래했던 달강(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중 Moon river), 작가 서머싯 몸은 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아예 달로써 예술의 세계, 이상의 세계를 은유했더랬다. 혹독하거나 지루한 현실을 벗어난 닿을 수 없는 그곳. 이에 그리워 수많은 재즈 싱어들 역시 '나를 달로 데려다 주오(Fly me to the moon)'라고 노래했던가 보다.

영화의 주인공 대니, 그는 아마도 사랑하는 이를 행복이라는 이름의 달로 데려다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는 그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달에 있느냐고 말이다.

"그가 당신을 웃게 해줘?"

이제 그녀는 그저 그런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을 뿐이라 고백한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으로 그곳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냥…울게 하지는 않아."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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