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서 찾기 힘든 출입문 사적 공간 보호하는 설계
지붕 높게 만든 솟을대문 가마 타는 높은 사람 의미
붉은 화살 박아놓은 홍살문 국가 표창 '정려'달아 비범

이제 고택으로 들어가 보자.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통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입하는데 초입에 개평교회가 있다. 지금은 주로 여기서 지곡초등학교 방향으로 우회전해 들어간다. 자연스레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동선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 포장도로는 마을의 북쪽을 감싸고 있어 이 길을 따라 고택으로 가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원래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교회 왼쪽으로 난 작은 시멘트 포장도로였다. 이 길은 작은 개평교회 왼쪽 하천을 따라 자연스레 마을 남쪽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북쪽길이든 남쪽길이든 무슨 상관이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원래 모든 건물은 주된 향이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건물은 남향을 선호했고 일두고택도 마찬가지다. 남쪽에서 접근하면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가 고택을 만날 수 있다. 이 방향이 고택을 만든 사람이 자연스레 의도한 설계이다. 그리고 이 의도를 따라가는 것이 조금 더 건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일두고택의 남쪽 진입로. 진입하는 사람의 동선과 시선을 북쪽에 있는 담장이 일단 한 번 차단하고 있다. 왼쪽 담장 끝부분 지붕 있는 곳이 행랑과 대문이다. 고택으로 진입하려면 일단 막힌 담장앞에서 왼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 일두고택의 남쪽 진입로. 진입하는 사람의 동선과 시선을 북쪽에 있는 담장이 일단 한 번 차단하고 있다. 왼쪽 담장 끝부분 지붕 있는 곳이 행랑과 대문이다. 고택으로 진입하려면 일단 막힌 담장앞에서 왼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대문의 위치

그래서 우리는 이 방향을 따라 고택으로 접근하려 한다. 다만,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였다. 집자리를 고르는 선택은 살기 좋은 곳을 찾는 것이었고 소위 명당이라고 말하는 공간은 대부분 남향이 밖에서는 내가 사는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주변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자연환경에서는 산, 언덕, 강 등이 이런 곳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일반 집에서는 이런 요소가 자연적으로 있기 어려우니 약간의 장치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일두고택도 마찬가지다. 남쪽에서 접근하면 어렴풋이 고택의 지붕들이 보이고 왼쪽으로 담장이 이어지다가 정면에 나타난 담장이 우리의 시선과 발길을 일단 한 번 차단한다. 그리고 여기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출입문이 나온다. 들어오는 방향을 따라 문을 내면 집안이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일 수 있으니 일단 한번 막은 다음 방향을 돌려 진입하는 방식을 하고 있다. 외부인들에게 내가 사는 곳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으려는 간단한 장치이다. 북쪽으로 접근하면 이런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담장을 쭉 따라가다 보면 바로 대문이 나타날 따름이다. 이렇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문은 사람이 출입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귀신 등 좋지 않은 것들도 출입할 수 있으니 잡귀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대문 너머에 간단한 벽을 만들기도 했다. 발리에서 잡귀들은 직진만 할 수 있다고 믿었고 문 뒤에 벽을 만들면 직진해 들어오는 귀신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일두고택의 대문. 주변 행랑채보다 한 칸 높이 만든 솟을대문이다. 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보게되는 광경인데 고택의 중심인 사랑채, 안채 등이 바로 보이지 않고 마당의 일부와 사랑채에서 안채로 넘어가는 작은 문만 보인다. 최대한 외부인의 시선에서 본채를 가리기 위한 장치이다. 문틀 사이로 홍살문과 정려가 보인다.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 일두고택의 대문. 주변 행랑채보다 한 칸 높이 만든 솟을대문이다. 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보게되는 광경인데 고택의 중심인 사랑채, 안채 등이 바로 보이지 않고 마당의 일부와 사랑채에서 안채로 넘어가는 작은 문만 보인다. 최대한 외부인의 시선에서 본채를 가리기 위한 장치이다. 문틀 사이로 홍살문과 정려가 보인다.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대문(大門)과 정문(旌門)

이제 우리는 대문(大門)을 마주했다. 대문은 집의 주 출입문이다. 일두고택의 대문은 겉에서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편이다. 좌우로 두 칸씩 작은 행랑채가 딸려있고 그 가운데 솟을대문을 한 칸 만들었다. 솟을대문은 주변 행랑채보다 지붕을 높게 만든 문이다. 초헌을 타고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집에 사는 주인은 적어도 가마를 타고 다니는 높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이는 대문이지만 막상 들어서려 하면 무언가 낯선 것들이 눈에 뜨인다. 글씨가 쓰인 붉은색 판자들이 여러 개 문에 매달려 있다. 이걸 정려(旌閭) 편액이라고 한다. 정려는 국가에서 효자, 충신, 열녀 등의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표창하던 풍습이다. 조선 후기에 오면서 양반제도가 혼란해지면서 정려를 내리는 기준도 많이 완화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려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두고택에는 모두 다섯 개의 정려가 있다. 이런 정려가 있는 문이 정문(旌門)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한 집이 가진 가장 많은 정려일 것이다. 효자정려가 네 개고 충신정려가 하나이다. 이 중 가장 위에 있는 것 하나만 살펴보자.

"효자통정대부판전농시사정복주지문 / 孝子通政大夫判典農寺事鄭復周之門"

- 숭정후사주계묘 4월 일 중건 / 崇禎後四周癸卯 4月 日 重建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효자인 것으로 보아 이건 효자정려이다. 띄어쓰기가 없어 더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의미를 맞춰 다시 써 보면 "효자 / 통정대부 / 판전농시사 / 정복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에서부터 주인공의 품계를 쓰고 이름을 마지막에 적는다. 통정대부는 정삼품 상(上)계를 말한다.

조선시대 품계는 9품이었다. 그리고 각 품에는 정(正)과 종(從)의 구분이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18품계가 있었다는 말이다. 정이 종보다 높다. 다시 6품까지는 상계와 하계로 나눴다. 통정대부는 '정3품 상계'의 품계명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차관급이다. 굳이 상계와 하계까지 설명한 이유는 정삼품 상계까지가 당상관(堂上官)이기 때문이다. 당상관은 당 위에서 임금과 함께 국사를 논할 수 있는 중요한 직책이라는 말이다. 정3품 하계부터는 당하관이 된다. 판전농시사는 조선시대 나라의 제사에 쓸 곡식을 준비하던 관청(전농시)의 우두머리를 말하는 직책이다. 즉 이 정문은 조선시대 정삼품 상계에 해당하는 전농시 판사였던 정복주라는 분의 효행을 기리는 것이다. 정복주 선생은 입향조인 정지의 선생의 아들이자 일두 선생의 조부이다.

정문 왼쪽에 작게 쓰인 글자는 이 정문을 다시 만든 시기이다. '숭정후사주계묘년 사월'에 중건했다고 한다. 숭정(崇禎)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이다. 의종의 재위기간은 1628년에서 1644년이다. 후(後)라는 말은 숭정황제 이후라는 뜻이다. 연호의 주인공이 이미 죽었는데 그의 연호를 쓰는 법은 원래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서기 2019년을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인 '융희 후 109년'이라고 쓰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정이란 연호를 사용한 이유는 비록 명나라는 멸망했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명과의 의리를 끊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정상이 아닌 상황이다. 당연히 공식문서에서는 청의 연호를 사용해야 했고 이런 연호는 주로 묘비 등 사적인 곳에 사용했다. 그래서 숭정후 사주 계묘년이란 말은 숭정연간의 마지막 해인 1644년 이후 네 번째 돌아오는 계묘년이란 말이다. 1843년이 된다.

▲ 홍살문.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 홍살문.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홍살문(紅箭門)

그리고 일두고택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이 정려들이 출입문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시설이 하나 있다. 홍살문이다. 홍살은 붉은 화살이 있는 문이다. 화살을 세워 잡귀를 위협하는 문이다. 화살도 무기이지만 색깔도 악귀와 싸우는 무기이다. 동지에 붉은 팥죽을 먹는 이유도 같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붉은색은 신성한 색이었다. 영어로 추기경을 뜻하는 카디널(Cardinal)은 추기경이 입는 후드가 달린 붉은색 망토를 뜻했다. 추기경은 가톨릭 교단에서 교황의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직위이다. 그래서 추기경의 제복 색깔인 붉은 색은 높은 신분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귀빈을 모시기 위한 카펫을 붉은색으로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생각하면 된다.

▲ 일두고택의 정려편액. 모두 다섯 개의 편액이 홍살문에 달려있다. 색은 조금 바랬지만 붉은색 원기둥을 가진 홍살문이다. 살의 모습은 가장 위 편액 좌우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왼쪽 가운데에는 동그란 태극무늬와 세갈래로 갈라진 삼지창의 모습도 보인다. 오른쪽도 원래는 동그란 부분에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 일두고택의 정려편액. 모두 다섯 개의 편액이 홍살문에 달려있다. 색은 조금 바랬지만 붉은색 원기둥을 가진 홍살문이다. 살의 모습은 가장 위 편액 좌우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왼쪽 가운데에는 동그란 태극무늬와 세갈래로 갈라진 삼지창의 모습도 보인다. 오른쪽도 원래는 동그란 부분에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최형균 LH 쿠웨이트 사업단

이런 홍살문은 왕릉이나 사당의 정면을 지킨다. 그러니 일두고택처럼 일반 주택에 홍살문을 만들고 정려를 다는 것은 범상치 않은 행위이다. 집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고택의 수준을 다시 한번 헤아릴 수 있게 하는 장치이다.

이 문을 보면서 손님들은 사극에서처럼 "이리 오너라"를 외치며 자신의 등장을 알린다. 그러면 문 바로 옆 행랑에서 사람이 나와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행랑아범이다. 다음 주에는 이 행랑아범이 이끄는 공간으로 들어가보자. 사랑채이다.

※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