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감독 영화 〈봄봄〉 - 쇠락한 중국 공업도시 배경
파루키 감독 영화 〈새터데이…〉 - 인질 테러사건 실화 바탕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주인공은 단연 넷플릭스 영화 <더 킹: 헨리 5세>겠다. 8, 9일 두 번 상영했는데, 8일 오전부터 상영관인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 앞으로 관객들이 긴 줄을 만든 걸 봤다. 영화는 오후 8시에 시작하는 데 말이다.

올해 영화제 목표가 재도약이었다. 세월호 다큐 상영이 갈등을 빚으며 시작된 침체가 지난해까지 이어졌었다. 예년의 축제 분위기보다는 못했지만 나름 활기찬 분위기였다. 그러고보니 올해가 24회째다. 24년 동안 이뤄낸 성과가 크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문득 10년 전에 썼던 부산국제영화제 기사를 다시 살펴봤다.

"우리의 생각이 시작되는 지점은 '낯섦'이다. 정확하게는 '익숙하지 않음'이다. (중략) 지난 16일 막을 내린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PIFF)에 참가한 작품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영화도 많았다. 이런 영화는 관객도 얼마 되지 않았다."

1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작품성을 떠나 일단 낯선 영화는 관객이 잘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양한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 영화〈봄봄〉./스틸컷
▲ 영화〈봄봄〉./스틸컷

◇잔잔한 생활 영화의 호소력

뉴커런츠 부문에 참가한 중국영화 <봄봄>(감독 리지, 2019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봄봄>은 중국 리지(36)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치치하얼시(市)를 배경으로 쇠락해가는 공업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치치하얼은 열차 부품을 만드는 국영기업이 있는 곳이다. 경기가 어려워지자 직원을 줄이기 시작하는데, 주인공 역시 이 공장의 정리해고 대상이다. 그러다가 운 나쁘게 공장 부속을 훔치는 도둑으로 몰려 퇴직금까지 받지 못하게 된다. 진짜 도둑을 찾는 과정, 그러면서도 다양한 일을 하며 도시를 떠나지 않고 살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수수한 화면에 담았다. 제작비가 적었기에 사실상 독립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영화에 담긴 치치하얼의 풍경들이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현실감이 있었다. 감독 역시 일상 생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려 애썼다고 한다.

▲ 리지 감독. /이서후 기자
▲ 리지 감독. /이서후 기자

리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까지 초청된 것은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이력을 보니 영화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원래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는데, 영화를 하고 싶어 상해희극학원에 다시 입학했다. 몇 년 동안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며 학비를 모았다고 한다. 승무원을 계속했다면 굉장히 안정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지만 그는 영화를 택했다.

<봄봄>은 상해희극학원 2학년 때 숙제로 만든 단편용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했다. 치치하얼은 그의 고향이라 더욱 세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실제 중학교 동기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국영 공장에 다니고 있기도 했다.

2018년 1월, 가장 추웠던 시기에 19일 동안 촬영을 했다. 치치하얼은 하얼빈보다 위에 있는 도시니 영하 20도 이하의 강추위가 이어졌을 것이다. 촬영 시기는 실제로 그 공장이 가장 힘든 때이기도 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공장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실제 중국 동북 지역 도시들은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거리 풍경에서도 젊은이들을 거의 볼 수 없었던 이유다. 영화 주인공도 끝내는 다른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난다. 하지만, 그가 이후 잘될 것인지, 계속 고생할 것인지는 관객들에게 남겨진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 영화〈새터데이 애프터눈〉./스틸컷
▲ 영화〈새터데이 애프터눈〉./스틸컷

◇극사실주의의 공포감

아시아의 창 부문에 참가한 방글라데시 영화 <새터데이 애프터눈>(감독 모스토파 사르와르 파루키, 2019년)은 아무래도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무서운 영화로 남을 것 같다. 특히 영화 초반에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2016년 7월 1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는 식당 '홀리 아티산 베이커리'에서 벌어진 인질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자동 소총을 든 이슬람 무장 테러범이 인질 35명을 붙잡고 있었는데, 코란을 암송하지 못해 이슬람 교도인 걸 증명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화를 만든 모스토파 사르와르 파루키(46) 감독은 이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신 인질들이 느꼈을 절망과 고통을 관객들이 최대한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중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게 영화 전체를 단 하나의 컷으로만 만드는 것이었다. 장면 전환이나 편집, 특수효과 없이 카메라 한 대로 끊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을 하는 것이다. 영화 길이가 86분인데, 이는 그대로 실제 촬영시간이다. 이를 위해 한 달 동안 카메라 감독과 수많은 리허설을 해야했다. 단 한 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촬영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세 번째 만에 촬영에 성공했다.

▲ 모스토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 /이서후 기자
▲ 모스토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 /이서후 기자

감독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이 현실감이다. 뭐 하나라도 영화로 설정된 티가 나면 현실감이 살지 않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영화였다고 한다. 실제 인질역을 한 배우 중에는 촬영 이후 혈압이 오르는 등 트라우마를 겪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루키 감독은 테러 당시 인질 생존자들은 영화보다 훨씬 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며 그들이 겪었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우린 왜 널 좋은 인간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을까!" 영화 중 중년 남자가 한 테러범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며 한 대사다.

실제 방글라데시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걸 믿기 힘들어 했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며 자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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