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유신정권 탄압에 반발 1979년 10월 일어난 시민항쟁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과제 "항쟁 관련자 보상법 개정을"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인지와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부마민주항쟁을 "들어는 봤지만 잘 모른다"던 시민들도 지역사회 노력과 정부의 국가기념일 지정으로 자긍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껏 학교 교과서에 한 줄이 언급되었지만 지역에서는 '부마민주항쟁'을 주제로 한 부교재가 발간된다.

'어디선가 일어서라 고함질러도 / 배고프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 어지럽지만 머무를 곳이 없는 / 우리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양성우 시인 <겨울 공화국>)

여전히 녹록지 않은 시대에 새로운 시작, 우리는 부마민주항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까? 40년 만에 다시 우리는 모두 마산, 그 자리에 서 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연합뉴스
▲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연합뉴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 열사 분신,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동일방직 사건, 그리고 YH무역 김경숙의 죽음과 계속되는 체포·연행·연금을 더는 목도할 수 없었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 5000여 명은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단하라" 구호를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항쟁은 18일 마산으로 확산해 마산대학교와 경남대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민주공화당사·파출소·방송국을 타격하는 등 격렬한 시위가 전개됐다. 10월 18일 마산 시내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

당시 경남대 학생이었던 최갑순 부마항쟁기념사업회장은 "부마항쟁은 1970년대 학생운동의 교내 시위 차원을 뛰어넘는 몇 만 명 규모의 대규모 민중항쟁이다. 당시 마산 부림시장 아주머니들도 시위 학생들을 숨겨주고 물을 주며 동조했다. 90%가 넘는 시민들이 항쟁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50·60·70대가 '겨울 공화국'을 깬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후대에 부마항쟁은 이름조차 가물가물하다. 한국민주주의연구소는 2017년 전국 성인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시민의식종합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민주화운동을 묻는 질문에 2.4%(24명)만이 부마항쟁을 꼽았다.

▲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마산에서 이동 중인 공수부대. /연합뉴스
▲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마산에서 이동 중인 공수부대. /연합뉴스

1979년 부마항쟁 이듬해 발생한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희생자가 많은 등 피해 규모가 컸기 때문에 연속선상에 있는 사건으로 묻혀버렸다. 또 1990년대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박정희 신드롬이 일어나는 등 경남·부산지역에서 보수성향 정치색이 짙어진 것도 한 요인이다. 부마항쟁 관련 진상규명법 제정이 너무 늦었고,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그런 배경에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성기 경남대 교수는 "김대중 정권 때는 DJP연합, 노무현 정부 때는 보수 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진상조사를 할 수 없었다. 부마항쟁보상법이 만들어지고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됐지만 부실조사가 이뤄졌다"고 했다.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 안 한 부실조사 보고서는 현재 수정·보완 작업 중이다.

지난 9월 17일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인식 변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전명진(25) 경남대 가정교육과 학생은 "경기도에서 살다 마산에 처음 왔을 때 친구들에게 무엇이 유명하냐고 물었고, 아귀찜과 함께 부마항쟁을 들었다. 경남대에서 시작된 시민항쟁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나서 월영지에 있는 부마민주항쟁기념비를 찾아가봤다"고 했다.

김민송(20) 경남대 소방방재공학과 학생은 "최초 시민항쟁으로 알고 있고, 학교 선배들이 참여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앞으로 잊으면 안 될 대단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경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 경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학교도 부마항쟁을 집중 재조명한다. '부산·마산지역에서 유신체제에 반발해 부마항쟁이 일어났다'는 한 줄의 역사는 한 권의 책으로 배우게 된다. 창원교육지원청은 <부마민주항쟁, 불꺼> 부교재를 오는 18일 발간할 계획이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 창원지역 중·고등학교에 우선 배포할 계획이다.

부마항쟁 정신을 재정립하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정성기 교수는 "부마항쟁은 3·15와 달리 학생 선도 이후에 산업화 산물인 자영업자,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아무런 이념 갈등 없이 자유, 민주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국민저항권을 관철했다"며 "국가기념일은 보수·진보, 우파·좌파를 모두 아울러야 한다. 4월 혁명 세대의 우파적 경향과 5·18 이후의 좌파적 경향이 소통·극복하는 데 부마항쟁 기념사업이 균형잡힌 시각으로 이바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영배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부마항쟁 연행자는 1500여 명이지만 관련자 신고 접수는 현재 314건에 그치고 있다. 공수부대 투입, 불법 구금, 고문 등이 확인됐지만 부마항쟁법은 30일 이상 구금자만 생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해 구금 기간이 짧은 이들의 신청을 막고 있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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