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 '주문을 잊은 카페'
경증치매 노인 활동 프로그램
손님 "어르신 용기 대단"호응

통영시 무전동에 있는 카페 도우. 한낮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으로 왁자지껄하다. 곧장 할머니 한 분이 테이블로 다가온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니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에서 따뜻한 커피 그림을 가리키며 주문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주문서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막대기로 표시한다. 가만히 보니 할머니가 들고 온 메뉴판에도 테이블에 놓인 것과 똑같은 음료 그림이 그려져 있다.

통영시가 치매인식개선 사업으로 추진하는 '주문을 잊은 카페'에서 경증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일하는 모습이다. 시는 치매어르신 자신은 물론 그 가족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소외감을 조금이나마 더는 것은 물론 어르신들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주변의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어울릴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주문을 잊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르신은 모두 8명이다. 2인 1조로 월·화·금 오후 4∼6시, 하루 두 시간씩 일하며, 음료 주문과 서빙이 주 임무다. 평균 나이 73세, 최고령은 만 80세 할머니다. 이들은 보건소가 치매어르신을 대상으로 운영한 쉼터교실에 참가한 이들로, 모두 가족 등의 동의를 받았다.

분명히 오늘은 할머니 두 분이 일을 한다고 했는데 한 분이 보이지 않는다. 시보건소 건강치매정책과 정선경 계장은 "한 분은 지금 오시는 중"이란다. 그는 "치매를 앓는다고 하지만 경증이라 혼자서 찾아올 수 있다고 했는데 길이 헷갈린 모양"이라며 "근처까지 오셨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금방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온다.

▲ 지난 7일 통영시 무전동 카페 도우에서 '주문을 잊은 카페'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과 관계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통영시
▲ 지난 7일 통영시 무전동 카페 도우에서 '주문을 잊은 카페'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과 관계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통영시

'주문을 잊은 카페'라는 사실을 모르고 온 손님들은 할머니들의 서툰 응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40대 여성은 "처음 주문을 받을 땐 약간 당황했는데 취지를 알고 메뉴판에 쓴 글을 보고 나니 오히려 어르신들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메뉴판에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생과일주스가 나와서 당황하셨나요? 주문을 잊은 카페에서는 흔한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들은 모두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신 분들입니다'라고 돼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이 일할 장소를 찾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비용은 시가 부담한다고 하지만, 치매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 차이로 업주가 꺼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카페 도우를 인수해 가게를 시작했다는 이준엽(34) 사장은 "전에 했던 분이 보건소와 '주문을 잊은 카페'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모양"이라며 "내 의견을 묻기에 어르신들이 다시 활기차게 사회생활을 하는 데 내가 도움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응했다. 할머니들이 일하는 시간이면 카페가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문을 잊은 카페'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모(용남면) 할머니는 "매일 집에 혼자 있다 보니 너무 적적한 데다 얼마 전 돌아가신 영감 생각이 나서 눈물을 자주 흘렸다"며 "그런데 카페에 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일을 할 수 있게 해줘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 7일 문을 연 '주문을 잊은 카페' 프로그램을 올 연말까지 운영한다. 이후 참여 업체 등이 늘어난다면 이 사업을 확대하거나 다른 치매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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