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돌을 맞은 한글날, 한글의 과학적인 우수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정신적 위대함을 자랑하는 이야기들이 각종 매체마다 가득 넘쳐났다. 전 세계 언어 중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표현이 풍부한 글로 인정받고 있으니, 그 가치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가운데 으뜸이라 하겠다.

그러나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글이건만 우리 국민에게도 그만큼 대접받고 있는지 아쉬울 때가 많다. 모든 언어가 시대에 따라 변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는 한글의 얼과 용법이 지나치게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한글날을 기리는 만큼 우리 고유의 글을 아끼고 가꾸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는 반성을 다시 할 수밖에 없다.

경남은 여느 지역 못지않게 걸출한 한글학자들을 배출해왔다. 영화 <말모이>의 실제 인물이라 하여 화제가 되었던 이극로 선생은 의령 출신이다. 선생과 조선어학회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우리 글은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뿌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학회를 함께 했던 울산 출신의 최현배 선생과 비교해, 이극로 선생과 진주의 류열 선생은 해방 후 밀양 김원봉 선생을 따라 북으로 가는 바람에 공적을 오랫동안 온당하게 평가받지 못했었다.

이극로 선생의 조력자이자 동지였던 건축왕 정세권 선생 역시 경남 고성 출신이다. 한옥 문화를 전승하기 위하여 오늘의 북촌마을을 만들고 경성 전역에 걸쳐 대단지를 조성한 그는 조선어학회 회관을 기증하는 등 이극로 선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한글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한글날에 이극로 전집 네 권이 빛을 보게 되었으니 큰 다행이요, 우리 지역으로서도 한글을 계승하는 새로운 계기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한글날을 제일 잘 기념하는 것은 가까운 역사적 자산을 소중히 여기고 오늘날 일상의 구석마다 한글 사랑을 퍼트리고 키우는 일이 아닐까. 한글로 아름다운 가게 이름 짓기, 우리 말과 글, 그리고 얼까지 말살하려던 식민지 잔재를 건설 현장 등 주변에서 청산하는 일, 모두 뜻이 반듯하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말과 글을 계승하는 데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경남에서 무슨 일을 더 많이 펼치면 좋을지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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