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성폭력 예방작업 반가워
체육계 인권감수성 향상 첫걸음

지난 4일 전국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올해로 100회를 맞았다고는 하나 전국체육대회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태풍 '미탁' 피해 복구와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관심으로 전국체육대회는 더욱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전국체전 최초로 '성평등'을 전면에 부각했다는 것이었다. '전국체전과 성평등'이라는 조합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체육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할 때 너무나 좋은 기획이 아닐 수 없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번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기간 성희롱·성폭력 종합예방센터를 설치해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울시 선수단복에 '성평등 서약 엠블럼'을 붙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두 가지 내용이 아주 특별하거나 놀라운 시도는 아니다. 그러나 체육계가 성평등을 중요한 이슈로 인식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특별하고 놀랍다

체육계는 남성 중심의 수직적 권력 구조와 폐쇄성으로 성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체육계에서 성인지성은 사실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난해 미투가 한창일 때도 체육계 미투는 다소 늦었다. 성과 중심의 위계적 조직 구조를 둔 체육계 특성상 미투는 충분히 예견되었으나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체육계가 가진 보수성과 폐쇄성으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어느 분야보다 조심스러웠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었다. 결국 올해 1월 심석희 선수를 시작으로 드러난 체육계의 성희롱·성폭력은 매우 충격적이고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리 애들이 있는데 룸살롱은 왜 가요?"라는 과거 한 여자농구팀 감독이 했던 말은 체육계 내에서 매우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성희롱·성폭력의 추악한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수 생사를 볼모로 잡고 이루어지는 선수·학부모에 대한 감독의 성폭력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전국체전과 성평등'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체육대회 기간 성희롱·성폭력 종합예방센터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 서울시 선수단복에 '성평등 서약 엠블럼'을 붙이는 것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시도가 체육계와 수많은 체육인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미투는 일상적으로 일어난 위계·위력에 의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세상에 드러내었고,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성희롱과 성폭력에 눈감았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평등에 대한 전국체육대회의 이 같은 접근 또한 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장미란·김연아·이상화 등 내로라하는 여성 체육인들을 배출하면서도 체육계 내 여성의 낮은 참여율과 남성 중심의 운영, 성차별적 관행, 성평등 의식 부족은 체육계가 되돌아보아야 할 지점이다.

서울시 선수단복 오른팔 가운데 있는 '성평등 서약 엠블럼'은 심벌 가운데 동등하다는 '='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체육인의 성평등 의식과 인권 감수성, 체육계의 차별적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미미한 이 같은 시도에 이토록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체육계가 성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했다는 점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을 시작으로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기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체육계가 1등이라는 성과 그 자체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평등한 과정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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