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족 중심 전국단위 조직
한 해 2600여 회 교류활동 펼쳐
전화 상담·매달 회보 발행도
스즈키 대표 '소통의 힘'강조
"바른 지식 갖게 된 것 큰 성과"

"누구나 자기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공익사단법인 '일본 인지증의 사람과 가족협회'(이하 인지증가족회) 스즈키 모리오(67) 대표는 인지증가족회 존재 의미를 한마디로 '공감'에 있다고 말한다.

▲ 일본 인지증가족회 스즈키 모리오 대표. 그는 인지증가족회 존재 의미를 한마디로 '공감'에 있다고 말한다. /이현희 기자
▲ 일본 인지증가족회 스즈키 모리오 대표. 그는 인지증가족회 존재 의미를 한마디로 '공감'에 있다고 말한다. /이현희 기자

과거 일본에서도 인지증(치매) 환자는 정신병원밖에는 갈 곳이 없는 격리 대상이었다. 가족 역시 환자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인지증이라는 질병을 드러내놓고 알릴 수 없어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던 시절, 이와 같은 고민을 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 만든 모임이 바로 인지증가족회다.

인지증가족회가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은 지역신문 역할이 컸다. 현재 본부가 있는 교토에 있는 <교토신문>에서 고령자를 위한 상담란을 지면에 연재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사연을 접할 수 있는 소통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교토신문은 지면을 벗어나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다. 신문 광고가 나가자 비단 교토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90명의 인지증환자 가족이 1980년 1월 20일 간담회를 진행하고, '어리석은 노인을 거느리는 가족 모임'을 만든 것이 바로 인지증가족회 시작이었다.

스즈키 대표는 "당시 이시카와현 병원에서 상담 업무를 맡으며 인지증 환자 가족 어려움을 알게 돼 가족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84년 이시카와현 지부 창립 후 사무국장을 맡았는데 초대 다카미 구니오 대표에 이어 2대 회장으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믿음 = 내년이면 창립 40주년을 맞는 인지증가족회는 2014년 오키나와 지부를 마지막으로 전국 47개 도도부현 지부 설립을 마쳤다. 현재 회원 수는 1만 1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인지증 환자 또는 가족이 45%, 개호(간호)서비스 경험자 19%, 전문직 봉사자 26%, 기업·단체 10%를 차지하고 있다. 연회비는 일반회원 5000엔이며, 후원회원은 1만 엔으로, 현재 후원회원은 1000여 명이다. 대부분 사업을 자체 회비로 충당하고 있지만 지부 단위에서 지자체 보조를 받아 협력사업을 펼치는 사례도 있다.

스즈키 대표는 "전국 단위 조직으로 발전해왔지만 현재 700만 명가량으로 추정되는 인지증 환자와 비교하면 회원이 많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도 "가족회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인지증을 앓는 고령자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가족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정보 공유와 소통이 점차 늘어나면서 인지증에 바른 지식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인지증가족회 대표사업인 전화상담은 인지증 환자 가족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인지증가족회
▲ 인지증가족회 대표사업인 전화상담은 인지증 환자 가족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인지증가족회

가족회는 '인지증을 앓는 고령자를 가진 가족이 서로 어려움을 나누고 힘이 되는 모임'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교류활동 △회보 발행 △전화상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교류활동'은 주로 가족모임·강연 등을 중심으로 지부마다 이뤄지는데 한 해 2600여 회에 달한다. 같은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회보'는 매달 가족회 활동 내용과 인지증 관련 정보, 회원 소개, 행사 안내, 상담 사례 등을 편집해 회원을 대상으로 현재 2만 부를 발행하고 있다. 회보는 <포레포레(POLE POLE)>라고 부르는데 아프리카어로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마음 편하게'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인지증가족회가 회원을 대상으로 매달 발행하는 회보 <포레포레(POLEPOLE)>. /이현희 기자
▲ 인지증가족회가 회원을 대상으로 매달 발행하는 회보 <포레포레(POLEPOLE)>. /이현희 기자

가족회에서 무엇보다 신경 쓰는 사업은 '전화 상담'이다. 본부에는 직원 7명이 상주하며 각종 사업을 담당하는데 이 가운데 2명이 전화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지부마다 인원은 다르지만 자원봉사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협력사업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이들이 언제나 쉽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전화 상담은 한 해 2만 건에 달할 정도로 가족회 대표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회원 가족 경험을 공유하고 쌓아온 결과 더는 인지증이 정신병이 아니라 대응 방법에 따라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됐다"며 "미약하지만 가족회가 고령화 사회의 과제를 한발 앞서 이끄는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환자·가족 목소리 반영할 창구 필요 = 인지증가족회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가족회 대표 사업이었던 전화 상담은 일본 정부 인지증 관련 정책 시행과 함께 지자체마다 운영하면서 예전보다 건수는 줄었다. 하지만, 그 성격은 다르다. 지자체에는 서비스 이용에 대한 문의가 많지만 가족회는 정신적 문제나 가족관계 등을 하소연하는 일이 많아 어려움에 부딪힌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사업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2000년 개호보험을 시행하기까지 인지증 환자와 가족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했던 것과 같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 가족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고령자 눈높이에 맞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 일본 인지증가족회는 전국 지부별로 인지증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해 2600여 회에 걸쳐 다양한 교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인지증가족회
▲ 일본 인지증가족회는 전국 지부별로 인지증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해 2600여 회에 걸쳐 다양한 교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인지증가족회

스즈키 대표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지금까지 가족회가 펼쳐온 활동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 약자인 고령자에 대한 배려를 제도화하는 일에 가족회 역할이 분명하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족회의 힘은 결국 소통과 공감에서 나온다. 인지증을 앓다 세상을 떠난 환자 가족 가운데 19%가량은 여전히 회원으로 남아 활동한다는 사실에서 가족회 저력을 엿볼 수 있다. 가족회는 올해 9월 21일 '세계치매의날'을 맞아 고령운전자를 위한 배려 문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인지증을 넘어 고령화 사회 문제 전반으로 관심을 넓혀가는 셈이다.

그는 "인지증은 함께 이겨내야 하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고령화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 문제 역시 함께 넘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난해 3월 한국치매협회와 상호교류 협약을 맺은 일을 떠올리며 "한국은 인지증 환자나 가족보다 의료·복지 전문가 위주로 협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다양한 의견과 전문성을 갖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국 당사자 처지에서 이해하고 변화를 이끌어가려면 무엇보다 인지증 환자와 가족이 앞장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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