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대표작 '일란'재현
난의 기품·향기 표현 일품
"춤에 대한 열정 되새겨"

지난 2일 오후 7시 30분 경남 무용계 거목 이필이(1935~2009) 선생의 10주기 추모공연 날. 사람들이 억수 같은 비를 뚫고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에 모여들었다.

사실 이날은 선생 2주기 후 오랜만에 열리는 추모공연인데, 행여나 태풍 때문에 취소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춤꾼이자 후배 춤꾼을 배출한 스승을 기억하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둥둥" 국보국악예술단의 모든북이 서막을 알렸다. 이후 출연진이 고인에게 하얀 국화꽃을 바쳤고 살풀이춤을 추며 가신 이의 넋을 위로했다.

이필이 선생은 마산 출신이다. 22살이던 1957년 무용연구소를 만들었고 많은 후학을 길렀다. 2008년 유방암 투병 중임에도 '춤 인생 60주년' 공연을 열어 춤에 대한 열정을 과시했다. 이필이 선생 하면 그의 호를 딴 창작무 '일란(一蘭)'을 최고로 꼽는다. 이필이류 산조춤으로 부드러움과 거침, 약함과 강함이 공존한다.

이날 후배 무용가 최재연·권수진·박은혜·허정심·신소빈 5명은 일란을 선보였다. 이들은 이필이 선생 수제자이자 이필이춤보존회 회장 이순자 씨에게 지난 4월 일란을 배웠다.

난초를 배경으로 한 무대 위에 무용수들이 난의 기품과 향기를 표현했다. 그들의 몸짓과 손짓, 발놀음에서 은은한 꽃향이 번졌다. 이후 이필이 선생과 친구인 이영구 씨 등 7명이 호흡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출하는 입춤을 추었다. 이어 지전무, 동래한량무, 함초롬이 선보였다.

▲ 지난 2일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이필이 서거 10주기 추모 무용공연이 열렸다. 후배 무용가들이 이필이 선생의 호이자 대표작인 '일란' 춤을 추고 있다. /마산영스튜디오
▲ 지난 2일 창원 3·15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이필이 서거 10주기 추모 무용공연이 열렸다. 후배 무용가들이 이필이 선생의 호이자 대표작인 '일란' 춤을 추고 있다. /마산영스튜디오

추모공연의 끝에 다다를 무렵, 이필이 선생을 기리는 창작무 '장구춤-만산홍엽(滿山紅葉)'이 무대 위에 올랐다. 이필이 선생의 삶을 자연에 빗댄 춤이다.

최재연·박은혜·허정심·신소빈·이혜원 무용가는 붉은 장구를 단풍에 비유하고 장구 소리는 단풍의 흩날림을 표현했다. 그들의 춤은 관객의 마음마저 가을빛으로 물들게 했다.

마지막 무대는 이순자 회장의 철금산조가 장식했다. 산조가락에 즉흥적으로 추는 춤으로 절제미가 돋보였다.

"짝짝짝" 관객의 환호 속에 이날 무대는 마무리됐다.

이필이 선생 서거 10주기 공연은 많은 이가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성사됐다. 사람들은 적게는 몇십 만 원부터 많게는 몇백 만 원까지 기부했다. 이날 훗날 열릴 추모공연을 위해 기부함이 마련되기도 했다.

10주기 추모공연을 기획한 정연규 마산예총 사무국장은 관객에게 "태풍이 오는데도 함께 해줘서 고맙다"며 "이필이 선생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배출한 춤꾼으로 마산이 춤의 고장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간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순자 회장은 "10년 전 봄날 선생을 잃은 큰 슬픔에 빠져 망연자실하던 기억을 뒤로하고 이번 추모공연이 선생의 춤 원형을 전승하고 그 정신을 이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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