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게슈타포 본부에 세운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나치 인사 철저 기록 감탄
홀로코스트 탑 내부에 서면피학살 유대인 심정 느껴져
베벨 광장 아래 매장도서관 과거 반성·기억 모범 사례

지난여름 독일 베를린으로 연극 소극장 관련해 출장을 다녀왔는데요, 취재를 하고 남은 시간에 베를린 시내를 좀 돌아다녔습니다. 요즘 역사문제로 촉발된 한일갈등이 심각하죠. 그래서 그런지 베를린 시내서 독일 전체주의 시대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나쁜 일을 많이 저질렀잖아요. 도대체 독일사람들은 그런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반성을 위한 철저한 기록

베를린 하면 우선 베를린 장벽이 생각나죠. 지금은 대부분 철거가 됐고, 상징처럼 몇 군데를 그대로 남겨 놓았습니다.

베를린 장벽은 옛날 동독에서 쌓은 후 오랫동안 동서냉전의 상징이었지요. 제가 간 곳은 베를린 중심인 포츠다머 광장에서 가까운 니더키르히너 거리에 있는 베를린 장벽인데요. 장벽도 장벽이지만, 바로 옆에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이란 곳이 인상 깊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박물관 자리가 원래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Gestapo) 사령부, 히틀러 친위대인 SS(Schutzstaffel)의 본부가 있던 곳입니다. 여기는 악질 중에서도 악질이었던 나치 정권의 핵심인물들을 자세하게 소개해 놨습니다.

한 명, 한 명 세세하게 기록을 해서 전시를 하고 있다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예를 들면 게슈타포는 어떻게 만들어진 조직이고, 조직도는 어떻게 되고, 그 단원은 누구누구고 그 한 명 한 명의 사진까지 다 있습니다. 여기는 단순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잘못된 과거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나 결심이 담긴 곳이라고 해야겠는데요.

사실 우리나라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관이나 박물관은 있어도 친일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친일 박물관은 없습니다.

그저 인명사전, 진상규명 보고서 같은 문서나 책자로만 정리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보여주기가 아닌 공감하기

자, 이제 우리는 독일이 이 학살된 유대인을 어떻게 기억하려 노력하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으로 가보겠습니다. 여기는 유물보다는 어떤 느낌과 이미지로 유대인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 같았는데요. 특히 인상적인 게 '홀로코스트 탑'이라는 곳입니다. 홀로코스트란 게 유대인 대학살을 말하죠? 혹시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재현한 건가 싶었는데, 그런 1차원적인 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내 홀로코스트 탑 외부. 내부는 어둡고 텅빈 공간이다./이서후 기자
▲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내 홀로코스트 탑 외부. 내부는 어둡고 텅빈 공간이다./이서후 기자

탑은 24m 높이로, 내부는 텅 비었는데, 좁고, 춥고, 어두운 공간입니다. 천장에서 겨우 한 줄기 빛이 들어올 뿐입니다. 혼자 한 5분 정도 있어 봤는데 오히려 그 빛 때문에 굉장히 까마득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실제 유대인들이 체포되고, 열차 짐칸에 실려 수용소로 실려가고, 수용소에 갇혀 가스실로 향하면서 느낀 절망감이 이랬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문을 열면 나갈 수 있잖아요. 유대인들은 그런 출입문조차 없었을 테지요.

또 한 곳, 소개할 장소가 베를린의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에 있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입니다. 여기는 약 5800평 터에 가로 1미터 세로 2.4미터 콘크리트 블록 2711개가 서로 다른 높이로 늘어서 있는데요. 이 속을 걷다 보면 블록들이 파도처럼 까마득하게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데, 뭔가 굉장히 은은하게 슬픈 느낌이 듭니다.

▲ 은은하게 슬프던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남쪽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이서후 기자
▲ 은은하게 슬프던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남쪽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이서후 기자

◇부끄러운 나치의 '책 화형식'

마지막으로 가 볼 곳은 베를린 시내 중심부에 있는 베벨 광장입니다. 1740년에 만들어진 곳이고요. 1947년에 SPD(독일사회민주당·사민당)를 만든 아우구스트 베벨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광장 동쪽에 국립 오페라 극장, 남쪽에 성 헤드비히 성당, 서쪽에 훔볼트대학 법과대학 도서관(원래는 왕실 도서관)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도로 건너편에 바로 훔볼트대학이 있어요. 노벨상 수상자를 40명이나 배출한 곳이죠.

그런데 1933년 5월 10일 저녁. 이 베벨 광장에서 독일 지성사에서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나치 제복 차림의 수많은 청년이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순례자의 합창'이란 곡을 부르며 이곳 광장으로 향합니다. 손에는 횃불이 하나씩 들려 있습니다. 광장에는 탄호이저 서곡이 연주되고 있었고요. 잔뜩 장엄하고 고양된 분위기. 광장 한가운데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 책은 훔볼트대학을 포함해 주변 대학 도서관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나치에 의해서 이른바 독일 정신에 어긋난다고 판정받은 것들입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같은 유대인 학자들의 것이죠. 그리고 나치를 반대했던 시인 브레히트 같은 독일 작가들까지 포함해 131명의 책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오른팔이자 나치 선전장관이던 파울 괴벨스가 이 청년들 앞에 서서 외칩니다.

"더러운 정신들을 불 속으로 던져라!!"

책 더미 위로 횃불들이 던져집니다. 그리고 누군가 휘발유를 가져다 붓습니다. 화염이 치솟았지요. 사람들이 환호합니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이걸 시작으로 독일 전국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책 화형식이 진행됩니다.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1995년 베벨 광장 한가운데 이 책 화형식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막상 베벨 광장에 가시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념물은 땅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하로 내려가서 보는 것도 아닙니다.

광장 한가운데 보면 유리판이 하나 있어요.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지하에 사방이 흰 책장으로 된 제법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다 채우면 2만 권 정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텅텅 빈 책장은 불에 타버린 책을 뜻합니다.

▲ 베를린 베벨 광장에 있는 '매장 도서관'.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책 화형식을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 정면으로 훔볼트대학이 보인다./이서후 기자 <br /><br />
▲ 베를린 베벨 광장에 있는 '매장 도서관'.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책 화형식을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 정면으로 훔볼트대학이 보인다./이서후 기자
 

이곳이 이른바 매장 도서관, 즉, 땅에 묻힌 도서관이죠. 책 화형식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아는 분들은 매우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겁니다. 매장 도서관 북쪽과 남쪽 바닥에 철판이 두 개씩 있는데요. 작품 설명은 아니고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책을 불사르는 건 오직 시작일 뿐이다. 결국에는 사람도 불태우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스라엘 예술가 미하 울만인데요.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미대 교수이기도 했지만, 이걸 만들 당시에는 유명한 분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 기념물을 만들 때 베를린에서 왜 이 작가를 선정했느냐 막 TV토론까지 했었다고 하네요.

매장 도서관은 낮에 가면 거의 안이 안 보입니다. 내부에 불이 켜져 있지만 유리판에 햇살 반사가 심해서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해야 내부가 보입니다. 여길 보기에 제일 좋은 시간은 해거름입니다. 해지기 직전에 가야 주변 건물도 다 보이고, 매장 도서관 내부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근데 막상 가시면 뭐야 이거, 하고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볼거리로서는 좀 부족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매장 도서관이 보여주는 그 상징성이나 표현력은 우리가 어떤 사건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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