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농민의 제철 농산물 꾸러미
기쁨·응원 함께하는 동료 든든해

올해부터 '마녀의 계절'을 보내기 시작했다. 마녀의 계절은 젊은 여성 농민들이 농사지은 제철 농산물을 담은 꾸러미 이름이다.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짓는 '달래', 전북 진안에서 농사짓는 '이슬', 경남 합천에서 농사짓는 '서와('글과 함께'라는 뜻으로 내가 쓰는 별명이다.)', 충남 홍성에서 농사지으며 논밭상점을 운영하는 '들'까지. 여성 농민 네 명이 모여 시작한 일이다. 봄에는 '달래', 여름에는 '이슬', 가을에는 '서와'가 꾸러미를 보낸다. 사람들한테 가끔 "왜 '마녀의 계절'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우리가 생각한 '마녀'는 그저 '마법을 부리는 여성'이다. 농사와 마법이 꽤 어울리는 낱말이라 생각했다.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생명을 길러내는 농민만큼 신비한 마법을 부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마녀의 계절' 꾸러미에는 농산물뿐 아니라 농민들의 삶 이야기도 함께 담긴다. 자연 안에서 농사짓다 보면 철마다 다른 빛깔과 냄새와 소리를 느낀다. 농민이라서 보이고, 농민이라서 누리는 사철의 흐름을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10월은 가을 마녀인 내가 꾸러미를 보낼 차례다. 내 손으로 일군 삶 이야기와 농산물이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있고, '처음 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가을 꾸러미에는 고구마와 단호박, 땅콩과 토종 울타리콩, 비트들을 담을 생각이었다. 마녀의 계절로 보낼 작물이라 거름을 넣을 때부터 하나하나 정성을 많이 들였다. 동물들이 밭에 자꾸 들어와 울타리도 튼튼하게 둘렀다. 그런데도 동물들이 자꾸 두둑을 헤쳐 놓는 바람에 마녀의 계절로 보내려고 했던 울타리콩과 단호박이 가는 줄기만 삐죽 자랐다. 어떻게 꾸러미를 채울 수 있을까? 밭에 갈 때마다 머릿속에 상자를 하나 두고 작물들을 넣었다 뺐다 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웃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럿이 머리를 맞대다 보면 좋은 생각이 쑤욱 자라곤 한다.

마녀의 계절을 하며 가장 기쁜 것은 '동료'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꾸러미를 보내는 것은 처음이지만 '마녀의 계절'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다는 것이 든든한 힘이 된다.

지난 태풍 '링링'이 지나갈 때, 충남 홍성에 사는 '들'은 피해가 컸다. 마녀의 계절 단체 채팅방에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라고 주문을 외워야겠어요. 그래도 마녀니까 주문이 통하지 않을까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정말 주문이 통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허브 농사를 지으려고 새로 지은 하우스는 몰아치는 비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이번 주문은 통하지 않는가 봐요'라는 답장이 왔다. 우리 마을에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들'이 비를 맞으며 하우스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 가는 한숨이 나왔다.

지난 태풍 '타파'는 우리 지역을 강하게 지나갔다. '서와네에 큰 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가기를 빌게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서로를 걱정하고, 생각하며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가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가을 꾸러미를 마치고 나면 네 마녀가 함께 겨울 꾸러미를 보낼 생각이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꾸러미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함께 모여 겨울 꾸러미를 보내고, 마녀 파티를 열기로 했다. 한 해 동안 농사짓느라 또 새로운 일을 무사히 해내느라 고생한 우리를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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