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지시 주민, 치매 환자 함께 보호
남 일·나만의 일 아니라는 것 깨달아야

#장면 하나. 몇 해 전 어머니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항암치료를 거듭하다 결국 호스피스병동에 모신 마지막 한 달 동안 정신을 놓는 날이 하루 이틀 늘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 한편 문득 어머니가 치매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했다.

#장면 둘. 지난 5월 '국민 어머니' 배우 김혜자가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로 백상예술대상을 받았다. 치매 환자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 드라마는 그 자체로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수상 소감은 다시 '장면 하나'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올해 초부터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획취재 지원사업을 준비하면서 '치매 국가책임제'라는 주제를 정하고 취재를 하는 동안 나는 '장면 하나'와 '장면 둘' 사이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치매를 바라보던 시선을 조금씩 늙어감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체 모를 두려움을 마냥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치매를 다루는 방식이 사뭇 달라졌다. 치매 환자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거나 가족에게 짐이 되는 곁가지처럼 치매 환자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의 시선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려는 시도가 늘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질병과 달리 환자 본인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생존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화의 한 과정으로 치매를 바라보고 보듬으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에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장면 하나'와 같은 상황이 내 머릿속에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지(宇治)시는 '인지증(치매) 환자가 살기 편한 마을'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선언하고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치매 환자의 일상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치 장애인을 배려해 다양한 사회보장장치를 마련하듯 치매 환자 역시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노력처럼 치매 환자를 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질병을 전파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정신질환과도 거리가 멀다.

치매를 뜻하는 '노망 난 늙은이'라는 일반적 표현에서 엿볼 수 있는 '편견'은 두려움을 만든다. 치매라는 질환을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 않고 외면하는 태도 역시 '오해'를 불러온다.

치매 국가책임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치매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다. 초고령화 시대를 맞은 우리에게 치매는 더는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왔지만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바로 치매 국가책임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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