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도시 지방자치단체 소극장 정책적 보조 활발
독일 민간 운영 극장 '하우' 베를린시 지원 등에 업고 실험적 작품 공연해 명성
도내 지자체-극단 머리 맞대 문화 거점으로 육성한다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라도 인기 TV 시리즈, 아이돌 그룹,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강력하다. 실제 문화 예술인들이 많이 모였다는 독일 베를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대중문화도 결국은 순수 예술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소극장의 의미를 짚어보자. "소극장은 사전적 의미의 작은 공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뚜렷한 이념과 방향성, 실험과 전위 그리고 창작과 꾸준한 공연을 통해 순수예술의 실현이 가능한 공간이다." - '소극장, 새로운 연극을 향하여'(전혜림 극작가, 부산문화재단 매거진 <공감 그리고> 2016년 겨울호 중에서).

◇일단은 지원이 필요하다 = 지금까지 다양한 극단과 극장을 살펴봤지만, 현실적으로 경남지역 소극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건 일단 공공의 지원이다.

사실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가 매년 부산 가을연극 페스티벌, 동아시아 연극캠프, 여름 창작낭독무대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부산시의 재정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대구 대명공연거리가 지역 공연문화 중심이 될 수 있던 것 역시 대구시 지원 덕분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7개 광역자치단체(이 중 경남은 없다)가 임대료를 내주는 것 같은 방식으로 소극장을 지원한다. 서울시가 2016년부터 시행한 서울형 창작극장 사업이 대표적이다.

독일 베를린 사례 중에서는 패러디 시트콤을 하는 프라임 타임 시어터(Prime Time Theater)가 우리나라 상황과 가장 비슷한 형태였는데, 이곳도 2009년 유럽지역발전기금(ERDF)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200석 규모에다 바와 홀까지 갖춘 버젓한 극장을 만들 수 있었다.

▲ 독일 베를린 프라임 타임 씨어터 입구에 자리한 바(Bar) 공간. /이서후 기자
▲ 독일 베를린 프라임 타임 씨어터 입구에 자리한 바(Bar) 공간. /이서후 기자

일본 나가사키 사례 중에서 유일하게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후스 컴퍼니 후쿠다 슈지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국가나 지역 정부가 돈을 투자해서 극장을 운영하고 극단이나 배우한테 대가를 지급하는 공립 극장 형태가 많아요. 저는 지역 극장도 공공 지원으로 운영하는 식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지역 연고 야구팀이나 축구팀처럼 지역민들이 사랑하고 응원하는 극장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부산이나 대구는 극장 집적화라는 방식으로 다양한 지원을 받기 위한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하지만, 20개 시군으로 흩어진 경남지역 극장과 극단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 독일 베를린 소극장 헤벨 암 우퍼 입구. 이곳은 민간이 운영하지만 베를린시 지원으로 실험성과 예술성이 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 명성이 높다. /이서후 기자
▲ 독일 베를린 소극장 헤벨 암 우퍼 입구. 이곳은 민간이 운영하지만 베를린시 지원으로 실험성과 예술성이 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 명성이 높다. /이서후 기자

◇예술적으로 자율성을 갖춘 공공 극장은 힘들까 = 여기서 독일 베를린에 있는 헤벨 암 우퍼(Hebbel am Ufer·HAU·이하 하우)라는 극장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있던 오랜 극장 3곳을 통합해 만든 이곳은 전적으로 민간이 운영하는 공연장이지만 예산 대부분을 베를린 시에서 받을 만큼 강력한 공공성을 띠고 있다. 실험적이고 예술성 강한 작품들이 공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연뿐 아니라 이 극장 자체로 진행하는 홍보 방식, 예컨대 포스터 같은 것도 굉장히 독특하고 예술성이 강하다. 그래서 공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베를린에서 꼭 찾아가야 할 곳으로 꼽힌다.

지금은 각각 하우(HAU) 1, 2, 3으로 불리는 세 극장에서 매년 5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린다. 연극을 포함해 춤·음악·행위예술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이 중 20편 정도는 새로 발굴한 실험적인 공연이다.

2012년부터 예술감독을 맡아 하우를 공연 명소로 만든 안네미 바나케르(Annemie Vanackere·53)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기 삼각형이 있다고 치면 한 점에는 극단, 다른 한 점에는 관객이 있고, 우리는 세 번째 꼭짓점에서 함께 한다고 보면 됩니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곳이거나 외국 극단들이 공연을 하겠다고 지원을 많이 하죠. 그 중에 선별해서 공연 방식과 예산을 책정하면 베를린 시에서 보조금을 주는 형식입니다."

▲ 독일 베를린 소극장 헤벨 암 우퍼 예술감독 안네미 바나케르 씨는 공공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소극장 운영이 충분히 가능하다 보고 있다. /이서후 기자
▲ 독일 베를린 소극장 헤벨 암 우퍼 예술감독 안네미 바나케르 씨는 공공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소극장 운영이 충분히 가능하다 보고 있다. /이서후 기자

어떻게 시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별다른 간섭없이 운영할 수 있을까.

"독일이라는 국가 자체가 예술이나 문화는 보조되어야 하고 진흥시켜야 한다는 신조가 있어요. 여기에 베를린은 특히 더 적극적으로 이런 정책을 펴고 있죠. 그래서 우리 같은 극장에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되는 것 같아요."

안네미 씨는 하우(HAU)의 운영 방식이 어느 나라에서나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경남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지난달 24일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열린 제9회 2차 경남연극인대회. 여기서 경남도립극단 설립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도내 민간 극단 중 세팀 정도 선정해 도립극단 역할을 하도록 하자."

이를 극단이 아니라 극장에 적용해보면 경남 지역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극장을 3곳을 통합해 공공 극장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예컨대 진주 현장아트홀, 통영 벅수골소극장, 창원 도파니아트홀이라면 각각 경남도립소극장 1, 2, 3으로 지역 거점 공연장 노릇을 하도록 하는 거다. 이러려면 단순히 임대료 지원 정도로는 되지 않는다.

아예 극장 건물 자체를 사들여서 통일성 있게 꾸며야 할 것이다. 또, 예술감독을 따로 두어 제대로 운영한다면 지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공연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독일 베를린 소극장 헤벨 암 우퍼에서 실험적 작품을 공연하는 모습. /HAU Berlin
▲ 독일 베를린 소극장 헤벨 암 우퍼에서 실험적 작품을 공연하는 모습. /HAU Berlin

◇극장이 동네 문화 거점이 될 수는 없을까 = 공공 지원과 별도로 개별 소극장도 지역 주민이 스스럼없이 찾는 문화 거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극장이 지역의 문화 거점공간이 되려면 지역 커뮤니티와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극장들은 대부분 전문 연극인들이 활동하는 공간이죠. 이런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과 친밀한 관계 형성이 소극장 활용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창작 단체들이 무조건 극장에서 공연을 하지는 않아요. 카페나 대안공간 같은 데서도 공연을 많이 하거든요."

 최윤우 한국소극장협회 사무국장의 말이다.

독일 베를린 극장들에서 눈길을 끈 것 중 하나가 극장 입구에 있는 바(bar)였다. 이런 바가 있어 공연을 보기 전후, 자연스럽게 한 잔 하며 공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경남 지역 극장에서는 사실 공연을 보는 것 말고는 달리할 일이 없다. 그러니 정식으로 공연을 보러 간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보자. 주민들이 퇴근길에 가볍게 즐긴다는 생각으로 찾는 지역 소극장이라면, 게다가 맥주라도 한 잔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꼭 바를 만들라는 게 아니라 이 정도 느낌 정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도내 극장들이 이런 일을 해낼 경제적 여력이 없는 게 아쉽다.

마지막으로 극장이 아닌 지역 관객들에게도 필요한 게 있다. 대중문화 말고도, 또 굳이 큰 공연장이 아니라도 소극장 연극도 포함해 주변에서 소소하게 이뤄지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즐기려는 마음이다.

순수 예술 활동이 얼마나 활발하냐 하는 건 한 지역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에 지역 연극인, 극단들도 정식 극장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하거나, 공연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겠다.〈끝〉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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