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지사 불통의 여파 지금도 계속돼
단체장이 좌지우지하는 구조 막아야

오랜만에 경남도청에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4년 전 경남도정을 담당하다 다른 부서로 발령났을 때만 해도 출입증이 있어야 현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동으로 문이 열리니 얼떨떨했다. 고공농성을 막는다며 신관 옥외계단에 쳤던 철조망도 사라졌다. 격세지감인가, 이게 뭐라고. 도청 중앙현관에 걸려있던 빨간 '당당한 경남시대' 간판은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으로 바뀌었다. 다시 도정을 맡은 지 두 달 지났다. 이제야 변화와 얼룩들이 보인다.

홍준표 전임 도지사가 2012년 12월 보궐선거에서 당선하고 재선해 2017년 4월 중도사퇴하기까지 4년여 동안 경남도정은 블랙홀이었다. 진주의료원 강제폐원, 학교무상급식 중단 사태에 다른 현안은 파묻혔다. 사회적 논의나 합의는 없었다. 불통도정에 도민은 주민소환에 나서기도 했다. 그랬던 시절과 비교하면 도청은 너무나 평온하다. 김경수 도정은 소통·혁신·참여를 강조한다. 민관협치·사회혁신·스마트공장…, 체감하기 어려운 의제들이지만 큰 변화다. 상명하복보다는 토론하는 분위기다.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이제야 말할 수 있다'는 듯 과거 도정을 평가하기도 한다. '이 산'이라 해서 따라 올랐는데 알고 보니 '저 산'이더라는 듯이. 홍 지사가 박종훈 도교육감, 여영국 국회의원 인지도를 확실히 높여줬다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무상급식 문제로 대립했던 박종훈 교육감은 무난하게 재선했고, 도의회에서 충돌했던 여 의원은 국회의원에 당선했으니.

옛 진주의료원에 들어선 서부청사, 멀리 합천으로 옮긴 문화예술진흥원, 창녕 우포로 간 람사르환경재단, 서부청사에서 있어 안전문제가 확보되지 않은 보건환경연구원 등 이전 적합성 문제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종합하면 과거 흔적, 남은 얼룩들이다. 채무제로 사과나무와 주목은 말라 죽었지만 그 여파는 계속된다. 양성평등·환경보전·중소기업육성·남북교류·청소년육성 등 12개 기금까지 폐지하며 억지로 만든 채무제로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간접자본 사업은 투자 적기를 놓쳐 더뎌지고, 보상비는 불어났다. 꼭 필요한 기금을 되살리면서 재정 부담은 크다. 예산 담당자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출자·출연기관 잡음도 마찬가지다. 최근 경찰은 경남개발공사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해 관련자를 무더기로 검찰에 넘겼다. 전·현직 임직원 8명, 2013·2015년 채용시험을 쳤던 10명, 면접위원·채용시험위탁업체 관계자 7명 등 모두 25명에 이른다. 홍준표 도정 때 일이다. 2년이나 지났는데도 설거지가 끝나지 않은 꼴이다.

그렇다고 이런 얼룩들을 말끔하게 지울 필요는 없겠다. 두고두고 되새기면서 까먹지 않는 게 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치단체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불안전한 구조를 막아야 한다. 소통, 협치, 참여로 되돌릴 수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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