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준 앞세우면 홍보 목적 달성 못해
윗분 입맛 맞추기 벗어나는 게 혁신 첫발

몇 년 전, 어느 제작물 평가 자리에서 어떤 급 높은 분의 혈압을 높인 적이 있다. 글자가 작다, 세모보다 네모가 더 낫다, 빨간색은 문제가 많다…, 혼자 연설하듯 평가를 하는 것도 지겨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보편적인 가치인 양 주장하는 것은 더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내뱉고 말았다.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제 눈에는 글자가 너무 크구요. 네모보다 세모가 더 낫습니다. 빨간색은 주목하기 좋은 색상이죠."

순간 흐르는 정적. 상사의 의견에 웬만해선 토를 달지 않는 공직사회에 몸담고 있는 분들에겐 문화 충격이었던 걸까. 나이도 한참 어린 것이, 그것도 자기들끼리 말하는 업자 주제에, 급 높은 분의 의견에 반격을 가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말 화살은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이 제작물을 볼 사람은 30·40대입니다. 그런데 60대의 눈으로 평가하는 게 맞을까요? 개인취향을 평가 기준으로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겁니다."

옳은 생각을 참으로 싸가지 없게 표현하는 재주. 그 재주를 쉼 없이 넘고 또 넘던 날이었다.

6년 전, 방송국에서 지금 회사로 이직했을 때 우리 대표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홍보물을 평가하지 말 것! 처음에는 그 말뜻을 몰랐다. 이제는 그 뜻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홍보물을 평가함에 앞서 늘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주요 타깃층은 누구인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나의 취향'을 '모두의 취향'으로 착각하는 순간, 제작물의 퀄리티는 떨어지고, 홍보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음을 알아가고 있다.

"도대체 저런 홍보물은 누가 만드는 걸까?" 가끔 관공서에서 불균형한 레이아웃과 무당집처럼 앞뒤 맥락 없는 색깔을 조합해 놓은 홍보물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생각한다. 홍보 전문가가 처음 제안했을 때는 분명 저 지경은 아니었을 거라고. 경험상 결과물은 홍보 목적과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의논해온 실무자와 마감 지을 때 최상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손을 대면 댈수록 퀄리티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자치단체장 이하 국·과장이 모여 저마다 제작물에 대해 한마디씩 거든 것을 조합해서 만든 홍보물이다. 저 과장이 말을 했으니, 나도 한마디 거들어야지…. 너도 나도 말 경쟁을 벌이는 윗분들의 시사회는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홍보 프로가 만든 제작물을 홍보 아마추어들이 평가하는 구조. 대부분 관공서가 홍보물을 처리하는 과정이다.

"좋네요. 다음부터 저한테 가져오지 마세요." 얼마 전, 창원시청에서 만든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시장님을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다. 제작물이 언제, 누가 대상인지 확인한 뒤 "전문가가 알아서 잘했을 텐데 제가 본다고 아나요"라는 말로 시연회를 마감 지었다. 혁신은 멀리 있지 않다. 홍보물 하나도 자신의 손으로 책임 있게 처리하기보다 윗사람 눈치만 보는 조직에서 시민을 위한 행정은 설 자리가 없다. 오직 윗사람한테 잘 보이기 위한 행정만 바쁘게 움직일 뿐이다. '짱'님들의 입맛에 맞추는 행정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되는 능동적인 행정이 바로 혁신일 터. 창원시장님의 발언은 작지만 새로운 공직사회를 만드는 혁신의 시작이 될 것이다.

"팀장님! 과장님이 표지 색깔을 ○○색으로 바꿔 달랍니다."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개인 취향을 존중할 것인가? 눈에 뻔히 예상되는 허접한 제작물. 그 부끄러움은 우리 회사의 몫일 터. 일단 설득을 해봐야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