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지원 기다리지 않고 직접 닷새 작업
시세 따르기보다 자기 노력 다하는 모습

태풍 '타파'가 산천을 할퀴고 가는 소리가 너무 요란하다. 땀 흘려 지은 농사가 태풍에 생채기 입는 것을 걱정하는 농부들의 타들어 가는 심사는 그보다 더 클 것이다. 하지만 농부는 안다. 자연이 하는 일을 그 곁에 기댄 생명이 간섭하고 막아설 일이 아니란 것을. 남아 있는 것들이나마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한 농부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한 농부가 있었다. 그 농부가 지은 닷 마지기 벼농사가 지난번 태풍으로 얼추 넘어가 버렸다. 마을 앞에 있는 데다 타동네에서 날마다 경운기를 끌고 노부부가 오고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를 잘 아는지라, 내 논 아니고 농심이 채 여물지 않은 얼치기 농사꾼이지만 쓰러진 벼논을 보며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이분들은 농기계보다는 몸으로 직접 농사를 지었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 벼농사를 짓는 방법은 대개 이렇다. 소를 키우는 축산업자에게 사료용 풀을 짓게 해주고 그 대가로 거름과 벼농사를 짓기 위한 논갈이를 해준다. 논 주인은 못자리에서 키운 모를 심고 가꾸기만 한다.

그런데 이분들은 그런 편한 농사를 짓지 않는다. 논에 거름도 경운기로 실어다 두 부부가 직접 내고, 벼를 거둘 때는 콤바인을 이용하지만 며칠이 걸리는 짚 모으기는 직접 손으로 한다. 가능하면 기계를 이용하지 않는 농법이다.

태풍이 지나갔을 때 마을 주민 몇몇은 그들이 쓰러진 벼를 어찌하나 관심 둘 수밖에 없었다. 다른 벼가 쓰러진 논들은 아무도 일으켜 세우지 않고 있었다. 군이나 면사무소에 피해 신고와 복구 신청을 해도 지원 인력이 과부족이어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했다. 아마 농부도 면사무소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풍이 지난 바로 뒷날부터 이 농부네는 벼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 노부부뿐이더니 이튿날부터는 아들과 셋이 온종일을 논에 있었다. 벼 세우기는 고역 중의 고역이란 건 군대서 대민지원을 해 봤거나 직접 농사지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농부 가족이 벼 세우기를 끝낸 건 시작한 날로부터 꼭 닷새 만이었다.

벼농사는 모두 알다시피 돈이 안 되는 대표적인 농작물이다. 관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쓰러져도 방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 지도 오래다. 이런 걸 그 농부는 악착스럽게도 해낸 것이다.

내게 이 농부의 농사가 특별해 보였던 것은 전통적 농법이니 하는 것을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돈이 되든 말든 시세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노력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다. 소위 환금작물을 좇는 시세에 비하면 어리석게 보일지는 모르나 그 방법으로 삶을 이어내는 모습이야말로 혼란스러운 시절에 돌아봐야 할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 감동했던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산 것인지 판단이 잘 안 서는 시절이다. 뻔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진영논리로 말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돌리는 세력의 광기로 참말은 모두 묻히고 있다. 촛불을 말할 주제는 아니지만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이 촛불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은 지금 철저히 짓밟히고 있는 듯하다. 너희도 했으니 우린 더 해 먹을 거라고 촛불을 들었다면 역사가 무서운 줄 모르는 짓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역사의 잣대는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하나였다.

현실적이지 못한 농부에게서 염치없는 이 시대의 가치관을 꾸짖는 회초리를 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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