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만 비틀스 아는 세상
자기 노래처럼 불러 유명
성공과 사랑 사이서 갈등
음악 아닌 로맨스에 집중
소재 참신하나 구성 아쉬워

영국 사람들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와 비틀스. 영국을 '비틀스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비틀스는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영국의 보물이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이다.

그런 비틀스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구글 검색에서도 사라지고 아무도 그들의 노래를 모른다면?

영화 <예스터데이>(감독 대니 보일)는 이런 기발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 남녀 주인공은 친구 사이다. 서로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고 있지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예스터데이> 중 한 장면. /스틸컷
▲ 남녀 주인공은 친구 사이다. 서로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고 있지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예스터데이> 중 한 장면. /스틸컷

◇비틀스를 모른다고? = 무명 뮤지션 잭(히메시 파텔)은 오늘도 노래한다. 무대를 마주한 객석은 텅 비어 있다. 때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거나 뛰어 다닌다. 어른들은 서로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의 무대는 늘 그렇게 초라하다. 잭은 가수가 되고 싶어 교사라는 직업도 휴직을 하고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노래를 부르지만 아무도 그의 노래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의 곁에는 매니저이자 가장 열렬한 팬인 20년 지기 엘리(릴리 제임스)가 있다.

유명 페스티벌 소형 텐트에서 최악의 공연을 마친 어느 날, 잭은 음악 생활을 그만두기로 한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갑자기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12초간 지구 전체가 정전된다. 그 순간 잭은 버스와 충돌한다.

퇴원하는 날, 친구들은 포기하지 말고 꿈을 위해 나아가라는 응원과 함께 새 기타를 선물한다. 멋진 노래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던 잭은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그런데 엘리가 묻는다.

"언제 작곡한 거야?"

▲ 노래하는 주인공 잭. /스틸컷
▲ 노래하는 주인공 잭. /스틸컷

◇가짜로 이뤄진 성배, 감당할 수 있겠니? = 비틀스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잭은 모든 기억력을 동원해 비틀스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 잭은 점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고, 천재 뮤지션이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Shape of you'를 부른 유명한 팝가수 에드 시런이 집으로 찾아와 함께 공연을 하자고 제안한다.

돈과 명예의 독배를 기꺼이 마시기로 한 잭은 LA로 떠나고,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던 엘리와도 헤어진다.

잭을 통해 비틀스의 노래가 하나둘 세상에 알려질수록 잭의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씩 더 큰 구멍이 생긴다.

'헤이 주드'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느냐는 에드 시런의 질문에 잭은 말문이 턱 막힌다. 본디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노래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꿈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에 벅차하면서도 잭은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잭은 가짜로 이룬 성배를 견딜 수 있을까?

▲ 잭(왼쪽)과 그의 매니저이자 열렬한 팬인 20년 친구 엘리. /스틸컷
▲ 잭(왼쪽)과 그의 매니저이자 열렬한 팬인 20년 친구 엘리. /스틸컷

◇시작은 참신했으나 익숙한 결말 = 비틀스가 사라진 세상, 비틀스의 노래를 제목으로 빌리는 등 영화는 온통 비틀스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예스터데이>는 음악 영화가 아니다. <노팅힐>(1999), <러브 액츄얼리>(2003), <어바웃 타임>(2013) 등을 제작한 워킹타이틀은 참신한 소재를 통해 또다시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잭은 엘리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고 있지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엘리 역시 잭을 좋아한다. 엘리는 잭의 1호 팬을 자처하며 그의 꿈을 응원하고 독려하는 것으로 마음을 전할 뿐이다. 이렇게 둘은 오랜 세월 지켜온 우정이 깨질까 속마음을 숨긴 채 관계를 유지 중이다. 하지만 잭이 고향을 떠나고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는 엘리가 먼저 사랑을 고백한다.

이제 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로맨스 영화로 직진하는 영화는 비틀스의 노래를 훔친 잭이 과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까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그저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함께 정해진 답을 향해 순탄하게 나아갈 뿐이다.

이 과정에서 비틀스가 사라지고 코카콜라가 사라지고 해리포터를 모르는 세상이 됐다는 것은 확실히 추임새에 머문다.

비틀스 노래 역시 맨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Ob-la-di, ob-la-da'와 엔딩을 장식한 '헤이 주드' 등을 제외하면 어느 곡 하나 시원하게 들리지 않는다. 'Let it be'의 첫 소절만 세 번을 들을 때쯤 살짝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떼창'을 부를 기회를 기대하고 갔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행복하고 싶어? 간단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서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해.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

영화의 소재는 참으로 신선했으나 별다른 갈등도 없이 익숙한 결말을 향해 무난하게 흘러가는 구성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가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행복에 공감하는 이들에게는 잔잔한 웃음을 주긴 하겠다.

도내 멀티플렉스 상영관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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