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개 극단 중 극장 보유 1곳, 경남 극단 비하면 연습실 수준
열악한 사정·환경 인정하지만 "소극장, 극단·관객 모두에 득"
장르 특화·소수정예 극단 등 공연장 구애 안받는 형태 고민

일본 나가사키현의 현청 소재지인 나가사키시는 인구 43만(2014년) 정도의 중소 도시다. 우리나라에는 나가사키짬뽕이나 카스텔라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에서 가장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유서 깊은 항구 도시다. 17세기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양과 교류가 허락된 곳으로, 한때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상인들이 정착해 살기도 했으니 어찌 보면 일본 근대 역사 시작점이라고 해도 되겠다. 한일관계 악화와 관련이 있는 방산업체 미쓰비시 중공업의 조선소가 이곳 나가사키에 있다. 이 때문인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는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이 떨어진 비극을 겪었다.

▲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그나마 연극을 할 만한 시민생활관 공연장. /이서후 기자
▲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그나마 연극을 할 만한 시민생활관 공연장. /이서후 기자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더구나 규슈 지역에서 가장 큰 후쿠오카도 아닌 나가사키를 찾은 건 경남 시군과 비슷한 규모와 환경이어서다.

사실 연극 극단이나 극장이 힘든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정부 보조금이 거의 없다. 그러니 애초에 나가사키에서 선진 사례나 모범 사례를 찾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본 중소 도시 극단들이 어떻게 생존하려 애쓰는지 살펴보자는 생각이었다.

◇유일하게 극장을 소유한 극단 후스 컴퍼니 =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역사가 오랜 만큼 나가사키시의 연극 역사도 오랠 테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산은 없다. 비록 도심이 아닌 산속에 떨어져 히로시마보다 피해가 적었다고는 하지만, 원자폭탄은 나가사키의 모든 문화를 거의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2차 세계대전 전에는 나가사키에 시민들이 만든 극단도 여럿 있었고, 미쓰비시중공업 내에도 사내 연극부가 활동할 정도였다고 한다.

▲ 일본 나가사키시에 유일하게 소극장을 보유한 극단 후스 컴퍼니의 공연 모습. /후스 컴퍼니
▲ 일본 나가사키시에 유일하게 소극장을 보유한 극단 후스 컴퍼니의 공연 모습. /후스 컴퍼니
▲ 일본 나가사키시에 유일하게 소극장을 보유한 극단 후스 컴퍼니 후쿠다 슈지 대표. /이서후 기자
▲ 일본 나가사키시에 유일하게 소극장을 보유한 극단 후스 컴퍼니 후쿠다 슈지 대표. /이서후 기자

전쟁이 끝나고 지금까지 70여 년, 다행히도 나가사키 연극의 명맥은 어렵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나가사키시에서 활동하는 극단은 10곳 정도, 나가사키현으로 범위를 넓히면 20곳 정도다. 하지만, 이 중에 어느 정도 활동을 하는 극단은 10곳도 되지 않는다. 이 중에 자체 극장을 운영하는 곳은 후스 컴퍼니(F's company)란 곳뿐이다. 1997년 만들어져 올해 22년 된 극단이다. 지난해 7월 새로 공간을 마련했으니 실제 극장 운영 기간은 1년이 조금 넘는다. 극장이라지만 최대 수용 관객은 50명 수준이다. 경남 지역 극단들과 비교하자면 연습실 수준의 규모다.

극장 운영비는 기본적으로 대관 수입에다 극단 대표인 후쿠다 슈지(44) 씨가 개인적으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충당한다. 그러니 극장 운영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구조는 아니고 유지 정도만 한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지만, 후쿠다 대표는 극단을 통해 제대로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연극을 하는 이들이 꼭 돈을 안 벌어도 된다는 게 선배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연극이란 것도 지금의 경제 시스템 안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요즘 같은 환경에서도 더 많은 이들이 연극을 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극단을 사단법인으로 만들고, 직원도 2명 두고 운영하고 있다. 돈을 번다고 해도 큰 극장을 고집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소극장이야말로 관객과 극단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장 적당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공연에 너무 많은 관객이 오는 것은 사실 그렇게 좋은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500명이 한꺼번에 오는 것보다 공연 기간을 넉넉하게 잡아 50명씩 열 번 오는 게 더 좋아요. 극단으로서도 공연을 여러 번 하는 게 공연 질도 더 높아지고, 관객들도 자신이 편안하게 오고 싶은 날짜와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 좋죠. 그래서 작은 공연장이 소중한 거예요."

▲ 극단 미스터리 모던관 시라하마 류지(왼쪽) 대표. /이서후 기자
▲ 극단 미스터리 모던관 시라하마 류지(왼쪽) 대표. /이서후 기자
▲ 극단 미스터리 모던관이 공연하는 모습. /미스터리 모던관
▲ 극단 미스터리 모던관이 공연하는 모습. /미스터리 모던관

◇극단 스타일이 확실한 미스터리 모던관 = 1996년에 시작해 올해 23년 된 미스터리 모던관은 여러모로 독특한 극단이다. 이름 그대로 미스터리 연극을 주로 만들어 공연한다. 극단 대표이자 극본을 쓰는 시라하마 류지(48) 씨가 원래 미스터리 소설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특색 있는 작품을 하는 만큼 때로 독특한 장소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나가사키항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공연을 했다. 관객들이 배 곳곳에서 펼쳐지는 무대를 따라다니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기본적으로 장르가 확실하니 마니아 관객이 많은 편이다. 보통 공연을 하면 200~250명 정도가 찾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극단의 스타일을 지켜보다 보니 다음 장면이나 결말을 쉽게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면 미스터리 전문 극단으로서의 체면이 안 선다.

"저희가 미스터리 장르로 특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제는 관객들이 극의 흐름을 예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극본을 쓸 때도 꽤 고심을 하고 있어요. 공연을 매번 오시는 분들도 있어서 예를 들어, 같은 공연을 이틀 동안 4회 한다고 하면 4회 모두 다른 결론으로 만들기도 하죠."

◇소규모 공연으로 활로를 찾는 히로시 군 = 실제 극장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후스 컴퍼니 후쿠다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이제는 지역에서 연극 극단이나 극장을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건 이미 결론이 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 중에는 적은 인원으로 유닛을 만들어 극단을 운영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일본 전체로 봐도 이렇게 소수 정예로 극장보다는 카페나 라이브 바에서 하는 게 주류가 되고 있는 분위기예요."

▲ 단원 5명의 유닛 극단 히로시 군 대표 신타로 히로시 씨. /이서후 기자
▲ 단원 5명의 유닛 극단 히로시 군 대표 신타로 히로시 씨. /이서후 기자
▲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연극 공연이 자주 열리는 라이브 바 보디투소울. /이서후 기자
▲ 일본 나가사키시에서 연극 공연이 자주 열리는 라이브 바 보디투소울. /이서후 기자

나가사키에서 이런 분위기에 맞는 극단이 있다만 아마 극단 히로시 군(軍)일 테다. 2007년 시작해 올해 12년째가 되는 이 극단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극단 대표인 신타로 히로시(32) 씨를 포함해 단원이 5명이다. 하지만, 히로시 씨를 빼면 다들 직장일에 바쁘고, 다른 지역에 살아 극단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한두 명이 함께 공연을 한다. 공연 장소는 주로 카페나 라이브 바다. 사실 나가사키에 연극 공연을 제대로 올릴 극장이 없기도 하지만, 이제는 라이브 바나 카페 공연이 그렇게 낯선 풍경도 아니다.

"조명이나 음향을 하려면 돈이 들잖아요. 저는 이런 것 없이 어디에 가나 할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있어요. 관객이 있으면 어디나 공연장이 되는 거죠."

후스 컴퍼니나 미스터리 모던관, 히로시 군 같은 나가사키 극단들이 규모나 환경에서 경남 극단들보다 더 열악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남 극단들도 이들과 똑같이는 아니라도 레퍼토리나 공연방식, 공연 장소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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