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협회 이끈 조민규 고문
자발적 후원제 운영 뜻 지켜
전국 넘어 국외서도 강사 초청
지난해 취임한 강재현 이사장
문턱 낮춘 강의 장소·시간 배치
지역민 함께 배우는 형태 갖춰

42년 동안 500회를 이어온 합포문화강좌는 애초 1970년대 노산 이은상이 제안해 만든 민족문화협회 마산지부 이름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폭발하던 산업화 시류 속에 정신적인 것을 잃지 말자는 취지였다. 매달 진행하는 강좌와 매년 진행하는 노산 가곡의 밤은 노산이 대표로 있던 민족문화협회가 서울에서 하던 방식으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마산지부는 민족문화협회의 유일한 지부였다. 그만큼 강좌 초창기에는 노산의 영향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서울에서 강연을 하거나 연주를 하면 마산에서도 한 번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름을 합포문화동인회로, 다시 1990년대에 사단법인으로 변화하는 동안 스스로 움직이도록 진화했다.

특히 자치단체 지원보다는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운영한다는 원칙과 정치색을 전혀 배제한 강사 섭외는 혼란한 시대를 거치면서도 강좌를 500회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

▲ 강재현 이사장. /이서후 기자
▲ 강재현 이사장. /이서후 기자

◇강사가 강사를 추천하다

지금까지 초청한 강사들을 보면 중구난방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전문 분야도 다양하고, 사상의 스펙트럼도 넓다. 때로 뜬금없이 왜 이런 분을 모셨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주 초창기에는 노산 선생의 영향이 없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초대하는 강사의 90% 이상은 이미 한 번 다녀가신 강사님이 후임으로 소개를 해준 분들입니다. 저희가 강사 추천을 요청할 때 같은 분야가 아닐수록 더 좋다고 말씀드리죠. 이렇게 해서 강좌 내용이 굉장히 다양해진 겁니다."

지난해부터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을 맡은 강재현(59) 변호사의 말이다.

명성보다 한참 부족한 강사료를 받고 오면서도 강사들이 합포문화동인회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다. 강 변호사는 두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지역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모임이 40년을 매달 어찌 보면 비실용적인, 요즘으로 치면 인문학 강좌를 이어왔다는 점인데요, 대개는 지식인이자 교육자인 강사들로서는 굉장히 감동적이고 매혹적인 청중인 거죠. 또, 강사료는 적어도 강사를 극진하게 모시는 전통이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도 강사가 오시면 여든이 넘으신 조민규 고문을 포함한 운영진이 역 입구가 아니라 플랫폼까지 꼭 나가서 마중과 배웅을 합니다. 물론 과도하게 보이기도 하고 실제 부담스러워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 정성이 그대로 보이니까요."

▲ 조민규 고문. /이서후 기자
▲ 조민규 고문. /이서후 기자

이런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지킨 원칙이 '자발적인 후원'과 '현직 정치인 섭외 금지'다. 이는 민족문화협회를 만들고 이후 합포문화동인회를 이끌어온 조민규(84) 고문이 초창기부터 지킨 원칙이다. 처음 단체를 만들 때 조 고문은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경남 제1지구당 사무국장이었다.

"제가 당시에 어느 회사든지 스폰서를 해달라 했으면 도와줄 사람은 많았어요. 실제로 그 정도 힘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안 했어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 그래서 제가 아는 친구들이 모여 십시일반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정치색은 전혀 담지 않았어요. 이런 게 그 엄혹한 계엄령 아래서도 사람들을 모아 강좌를 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요즘에는 정치인이라도 경남도지사, 경남도교육감, 창원시장은 임기 초반 반드시 한 번은 초대한다. 지역민의 삶과 직결되는 선출직 정치인들인 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지금까지 쌓인 강사 인맥은 이제 외국 유명 인사를 초청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미 베트남 대사,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 중국 대사 등이 강사로 선 적이 있지만, 이번 500회 특별 강사로 마윈, 시진핑, 무라카미 하루키, 오바마, 클린던, 마이클 샐덴 같은 이들이 물망에 올랐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중에 오바마와 클린턴, 마이클 샐덴과는 실제 접촉을 했었다고 한다.

▲ 2011년 민족문화강좌 400회. /합포문화동인회
▲ 2011년 민족문화강좌 400회. /합포문화동인회

 

▲ 2016년 창원상의와 협약. /합포문화동인회
▲ 2016년 창원상의와 협약. /합포문화동인회

◇일반인 대상 무료 공개강좌

여기서 약간의 오해를 풀 필요가 있겠다. 합포문화강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강좌다. 회원이 아니라도 아무나 가서 들어도 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자리가 부족하면 회원들이 자진해서 서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까지 합포문화강좌는 거의 마산 사보이호텔에서 아침 일찍 조찬과 함께 진행됐다. 무언가 VIP들만 참석하는 느낌이 강했다. 실제 강연장도 원탁에서 식사를 하는 형식이어서 막상 일반인이 가더라도 끼어들기가 망설여지는 분위기였다.

이걸 바꾼 건 지난해 취임한 강재현 이사장이다.

"원래 취지가 함께 배움을 나누자는 거였는데, 시간이나 장소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던 점이 있었어요. 애초에 조찬 강연을 하게 된 이유는 강사님들이 서울서 오시면 그 전날 저녁에 와서 아침 강연을 하고 돌아가시는 게 동선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왕 모시기 어려운 분들을 모셨는데, 그분이 말씀하시는 이야기가 좀 더 지역에 뿌려지려면 더 많은 이들이 들어야겠다 싶어 장소를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실로 옮기고 시간도 저녁으로 잡고 식사도 없애버렸죠."

▲ 합포문화동인회 역사 탐방. /합포문화동인회
▲ 합포문화동인회 역사 탐방. /합포문화동인회
▲ 지난 2017년 열린 제1회 합포 조민규 봉사상 시상식. /합포문화동인회
▲ 지난 2017년 열린 제1회 합포 조민규 봉사상 시상식. /합포문화동인회
▲ 영리더스 강좌. /합포문화동인회
▲ 영리더스 강좌. /합포문화동인회

◇500회 기념 연속 강좌

합포문화동인회는 500회를 기념해 연속 강좌를 마련했다. 물론 공개 무료 강좌다. 19일 499회 강좌는 정창영 전 연세대학교 총장이 '민본 경제 : 따뜻한 마음, 냉철한 이상'을 주제로, 26일 500회는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정의로운 사람, 정의로운 나라'를 주제로, 10월 10일 501회는 배양숙 글로벌인사이트포럼 대표가 '큰 변수, 문제해결의 핵 - 경험지식의 힘'을 주제로 강연한다. 모두 시간은 오후 7시 15분, 장소는 경남은행 본점 지하 2층 대강당이다. 또 500회 강좌 다음날인 27일 오후 6시에는 창원 리베라컨벤션 7층에서 500회 기념식과 문화강좌 5집 출판기념회, 제3회 합포 조민규 봉사상 시상식을 연다.

이어 11월 6일 오후 7시 30분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500회 기념음악회 겸 제35회 노산가곡의 밤을 진행한다. 12월에는 합포문화동인회 40년사 출판기념회도 계획돼 있다. 강좌 문의 055-240-6090.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