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간 주변 곤충 관찰한 아이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몸으로 느껴

행정실에서 다급하게 '야동 샘'을 부릅니다. '야동 샘'은 아이들이 야생동물 동영상 좋아하는 도덕샘한테 붙여준 별칭입니다. "화단에 벌이 나타났는데 에×킬라 칠까예?" "잠깐만요. 어떤 벌인지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급하게 달려가 현장을 살펴봅니다. 일단 쏘는 벌인지 안 쏘는 벌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생긴 모양이 나나니벌 종류로 추정됩니다. 비슷한 종으로 대모벌도 있습니다. 아직 위험 정도나 생태는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상태인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둘 아이들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벌에 쏘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며 접근을 막아 보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아이들과 함께 화단을 관찰합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본 결과 우리 학교 화단에 찾아온 손님은 홍다리조롱박벌. 다행히 사람을 쏘지 않는 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침 쏘는 벌들 생태와는 사뭇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틈나는 대로 '삼계중 곤충기'를 써 봅니다. 홍다리조롱박벌은 베짱이 무리를 사냥합니다. 장마가 끝나는 시기부터 9월 중순까지 사냥이 이어집니다. 사냥 나가기 전에 땅에 구멍 파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구멍 파기 도사입니다. 흙과 모래가 적당히 섞여 있는 물 빠짐 좋은 땅 찾아 공사를 시작합니다. 좁은 공간에 열 마리 넘는 홍다리조롱박벌이 모였습니다. 적당한 장소를 찾은 후 일제히 땅 파기를 시작합니다. 처음에 본 행정실 주무관 눈에는 상당히 험악하고 위협적인 벌로 보였을 듯합니다. 굴 파기 공사할 때는 '지지지 '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야동 샘'과 아이들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 이용해 틈틈이 관찰을 이어갑니다. 굴 파기가 마무리되면 학교 밖으로 비행을 나간 홍다리조롱박벌이 뭔가를 포획해서 날아옵니다. 다리가 긴 베짱이 무리입니다. <파브르 곤충기>를 비롯한 관련 자료를 훑어보니 궁금증이 해소되기 시작합니다. 나나니벌은 애벌레, 황대모벌은 긴호랑거미나 왕거미를 사냥하는데 홍다리조롱박벌은 메뚜기와 베짱이를 사냥합니다.

사냥해온 먹이는 굴 근처에 놔두고 우선 굴을 다시 팝니다. 이때 굴 근처 풀잎 위에 앉아 있던 기생파리가 접근합니다. 기생파리는 홍다리조롱박벌이 물고 온 베짱이를 노립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봅니다. 눈 깜짝할 사이. 순식간에 알을 낳고 사라집니다. 곤충 세계에도 사람 사는 세상에도 이런 일은 어김없이 일어납니다. 아이들에게도 설명해주긴 했는데 아직 '무임승차' 개념은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단 표정입니다. 홍다리조롱박벌은 베짱이 몸통과 다리가 모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되면 주변을 살펴본 후 잽싸게 굴속으로 물고 들어갑니다. 이제 마무리 공사할 시간입니다. 굴 근처에 모아 둔 흙을 다시 굴속에 채우기 시작합니다. 안전하게 아기 키우기 위한 모성 본능은 한 치의 오차나 실수 없이 작동됩니다.

약 한 달 정도 되는 기간 꾸준히 관찰했는데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합니다. 생태계에서 곤충이 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곤충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무서움에서 친근함으로, 무조건 위험하다는 생각에서 건드리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터 잡고 사는 뭇 생명들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화단에 사는 지렁이, 꽃에 내려앉은 호랑나비, 건물 주변에 사는 거미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를 살짝 바꿔보았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홍다리조롱박벌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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