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딸의 물음
때론 거친 바다 같지만 추석엔 반짝이길

태풍 링링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베란다 유리 창문 사이에 신문지와 테이프를 고정시키고 무사히 태풍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예전에 왔던 태풍 매미의 기억으로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을 졸였다. 사라·루사·매미 등 추석 전 태풍이 위력이 세 많은 피해를 주었다. 여름 동안 바닷물 수온이 높은 영향으로 추석 전 대형 태풍이 온다는 기상청의 말이다.

함께 유리창에 신문지를 붙이던 딸이 문득 질문을 했다. "엄마는 인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잠시 손길을 멈추고 딸을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았다. 태풍 전야는 고요했다.

이제 이십대 초반인 딸의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고 갑자기 성장한 것처럼 보여 대견하기도 했다. 여름 폭염 속에 한 달간 어느 기업체에서 실습을 성실하게 마친 딸이 속으로 무척 대견했다. 그냥 학교만 다니면서 막내딸로서 대한 일상 대화가 아닌,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겪은 예비 사회인으로서의 대화라 잠시 생각을 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 같아"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라고 묻는 딸의 질문에 "바다는 잔잔한 것 같아도 끊임없이 파도가 치고 있단다. 큰 파도, 작은 파도를 치며 수많은 물결이 밀려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파도를 만나게 된단다. 그럴 때마다 지혜롭게 항해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딸은 그 말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의젓한 사회인이 되어 다양한 파도의 물결을 맞을 딸의 안전한 항해를 바라며 아무 일 없이 태풍 링링이 지나가길 바라고 싶었다.

문득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광암에 사는 바다의 여선장으로 불리는 시인 김명이. 수십 년간 바다에 나가서 파도와 맞서면서 배운 삶의 철학을 언젠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바다에서 배운 인생의 철학이라며, 살다보면 많은 파도를 만날 수 있는데 큰 파도를 만날 때는 몸을 엎드려서 숙여야 하며 맞서면 큰 피해를 본다고 한다. 그리고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잔잔한 바다를 만나고 햇살 부딪히는 물결로 마음이 환해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인생의 지혜가 들어 있는 시인 말을 기억하며 살다보니 지금까지 마음의 평온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 같다. 이제는 예비 사회인이 되려는 딸에게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가 된 셈이다.

이십여 년 전부터 맺은 인연으로 만난 김 시인은 나에게는 어머니 같은 분이다. 마당에 있는 앵두나 보리수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매년 전화가 온다. 마당의 열매가 많이 익었으니 늦기 전에 따러 오라고 한다. 해마다 함께 열매를 따면서 인생 이야기도 듣는다. 따온 열매로 술을 담그거나 즙을 내어 건강음료를 만든다. 그러고 보니 김 시인은 내 인생에서 무척 소중한 한 사람이다.

태풍 링링은 전국에 많은 피해를 주고 지나갔다. 큰 파도처럼 다가온 태풍에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햇살이 반짝인다.

추석이 다가온다. 어린 시절 어머니 곁에서 송편을 빚거나 추석빔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잠들었던 추석이 생각난다. 이제는 딸과 함께 음식을 장만하고 가족과 함께할 추석 준비를 하고 있다.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물결처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한가위였으면 좋겠다. 윤슬처럼 잔물결이 반짝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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