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북천역 - 새 역사 지어 옛 건물은 카페로
함안 군북역 - 1980년대 서북부경남 관문 역할
진주 평촌역 - 2012년 운영 중단해 공방 변신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다 양손 가득 선물꾸러미가 들려 있는 모습. 추석이면 지역 곳곳에 있는 기차역마다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과거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자동차를 가지기 어려웠던 시절, 기차는 누구에게나 고향으로 손쉽게 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아쉽게도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은 그동안 꾸준히 선형 개량과 복선화 등을 거치면서 수요가 작은 역들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비둘기호와 무궁화호를 대신해 KTX가 운행하면서 남은 역도 새롭게 신축하거나 터를 이전해 옛 풍경을 떠올리기 힘들어졌다.

더는 '코스모스 피어있는' 옛 풍경과 덜컹거리던 완행열차를 볼 수 없지만 여전히 푸근함을 전하는 '고향역'. 그곳에 서서 길게 평행선을 그리던 철길을 따라 고향역이 가까워지면 그제야 환한 웃음이 맴돌았던 귀성길을 떠올려본다.

▲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은 그동안 꾸준히 선형 개량과 복선화 등을 거치면서 수요가 작은 역들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사진은 옛 하동 북천역. /경남도민일보 DB
▲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은 그동안 꾸준히 선형 개량과 복선화 등을 거치면서 수요가 작은 역들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사진은 옛 하동 북천역. /경남도민일보 DB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하동 북천역' = 1968년 2월 운영을 시작한 하동 북천역은 진주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수확한 농산물을 팔려는 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진주로 가는 시외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으나,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도로(국도 2호선)도 비포장에 좁아 불편하고 위험했다. 남해고속도로도 1970년대 중반에야 개통했다. 그런 까닭에 학생들과 지역 주민 그리고 명절 에 고향을 찾는 향우들에게 기차 운행은 뛸 듯이 기쁜 소식이었다. 부산에 가장 많이 살았던 하동 향우들은 경전선 개통 이전까지 명절이면 주로 배를 이용해 고향을 오갔다.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연간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이었지만 대중교통 발달과 자가용 차량이 늘면서 하락의 길을 걸었다. 추석 때면 수많은 이들로 북적이던 역사도 어느덧 적막해져 갔다.

하지만, 2007년 시작한 북천면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증가해 한산했던 북천역이 활기를 되찾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 북천역은 2016년 마무리한 경전선 복선화로 옛 북천역 인근으로 이전해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다. 옛 북천역은 카페와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으로 바뀌어 이제는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은 그동안 꾸준히 선형 개량과 복선화 등을 거치면서 수요가 작은 역들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사진은 옛 함안 군북역 모습. /군북면사무소
▲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은 그동안 꾸준히 선형 개량과 복선화 등을 거치면서 수요가 작은 역들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사진은 옛 함안 군북역 모습. /군북면사무소

◇흥망성쇠를 다 겪은 '함안 군북역' = 1923년 12월 보통역으로 시작한 함안 군북역은 더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 주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2012년 기존 역을 허물고 새로운 역으로 이전하면서 화려했던 과거를 옛 기억으로만 더듬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만 남았다.

옛 군북역에는 상징처럼 향나무가 승강장에 버티고 있었고, 조차장 주위에는 벚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진해 군항제 때 경화역 못지않게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었다. 원래 지금보다도 훨씬 나무가 많았는데, 이 나무들은 5공화국 시절 조경용으로 어디론가 팔려나갔다는 소문도 있다.

주민들은 밀양 삼랑진역처럼 급수탑 시설을 보존·관리했더라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경전선을 잇는 군북역은 개설 당시만 하더라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해주는 급수시설을 설치해 웬만한 기차들은 군북역에 정차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사설철도(마산∼군북) 종착역이기도 했던 군북역은 역 광장이 매우 넓었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함안장이나 의령장보다도 큰 장이 열리는 곳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북부 경남의 관문으로, 쌀을 팔고 사는 미전이 10군데나 있었고 일제강점기 중반에 이미 진주까지 철로를 연장했지만 군북역은 여전히 물동량이 많았다. 현재 대한통운 창고와 넓은 광장이 빛바랜 흔적으로 남아 있다.

▲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은 그동안 꾸준히 선형 개량과 복선화 등을 거치면서 수요가 작은 역들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사진은 옛 진주 평촌역 모습. /김종현 기자
▲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은 그동안 꾸준히 선형 개량과 복선화 등을 거치면서 수요가 작은 역들이 자연스레 모습을 감췄다. 사진은 옛 진주 평촌역 모습. /김종현 기자

◇다시 발길을 기다리는 '진주 평촌역' = 진주 가장 동쪽 끝에 있는 평촌역은 2012년부터 더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1925년 배차간이역으로 시작한 작은 역이었지만 90여 년 동안 주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발 노릇을 했다.

70∼80년대 연간 10만여 명이 이용하는 꽤 북적거리는 역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이 임차해 염색공방으로 이용하고 있어 내부 모습은 완전히 변했다. 그래도 외관은 폐역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평촌역이라는 간판이 있고, 2층 슬래브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국기게양대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철로가 철거된 자리는 관리가 안 돼 잡초가 무성하다.

창원역장을 지내고 귀향한 김구진(67) 씨는 "평촌은 진주와 마산의 중간쯤 된다. 그래서 절반은 진주로, 절반은 마산으로 진학했다. 등교시간에는 평촌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나 돼 장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명절에는 귀향객 때문에 진주나 마산에서 기차를 타기조차 어려웠다. 객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난간에 서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릴 때는 문으로 내리지 못해 좌석을 밟고 가방을 먼저 던지고 창문으로 내릴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명절이면 시끌벅적했던 평촌역은 이제 사람들 왕래를 찾아볼 수 없어 적막이 가득하다. 다행히 내년부터 경전선 폐선을 이용한 자전거도로를 평촌역까지 연장하는 계획이 구체화하면 사람들에게 잊힌 평촌역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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