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번역가이자 시인의 '결혼·출산 기록'에세이
돌봄노동 보조 아닌 주체되는 남성 육아휴직 권유

"아는 분이 이런 책을 냈는데, 한 번 읽어보이소."

<두 번째 페미니스트>(아르테, 2019년 6월)는 출판사에서 책이 도착하기 전에 주변에서 먼저 권한 책이다. 저자인 서한영교(36) 씨가 창원대 철학과를 나오기도 했고, 그가 창원대 앞 우영프라자 근처에서 공유공간을 운영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많은 까닭이다. 2013년에는 대학생이자, 대안학교 경험을 책으로 낸 작가, 공유공간 운영자로 <경남도민일보>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 〈두 번째 페미니스트〉서한영교 지음.
▲ 〈두 번째 페미니스트〉서한영교 지음.

그로부터 몇 년 사이 그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현재 서울에 살고 있고, 결혼을 했으며 아들 '서로'의 아빠로 살고 있다. 지난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하청문필노동자(번역, 카피라이팅 등)로 일하며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책 <두 번째 페미니스트>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여러 매체에서 그의 책을 중요하게 소개했고,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서울 지역 언론사들과 인터뷰도 했다.

◇사랑과 신념에 대한 물음 = 처음 제목만 보고는 페니미즘에 대한 에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건 그냥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하게는 결혼과 육아 일기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사랑과 육아에 대한 지침서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쉬운 길이 있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 무모할 정도의 용기를 낸 한 인간의 사랑과 신념에 대한 철학서라고 해도 좋겠다.

서한영교 씨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한다. 그는 희귀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시각장애인과 결혼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보이긴 하는 기가? 일일이 반찬까지 다 챙겨줘야 하는 기가? 한평생을? 니가? 우찌 데리고 살 낀데, 정신 차리라. 당장 헤어지그라.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애인은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38쪽)

마치 소설 속 문장 같지만, 이건 실화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나중에 이 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하셨다고 한다.

▲ 서한영교 씨 가족 사진. /아르테
▲ 서한영교 씨 가족 사진. /아르테

이야기는 계속해 결혼, 그리고 출산과 육아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용기 있는 선택을 이어간다.

"산부인과에서 2주 뒤에 기형아 검사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난다고 해서 아이를 지우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고 했다.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검사를 권장한다고 했다. 우리는 확률적으로 출산할 수밖에 없는 장애아/기형아를 낳게 된다면 그것도 우리가 감당해내야 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62쪽)

◇태초에 인간은 남녀 공동 육아를 했다 = 그는 육아를 준비하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으로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1998년),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2011년)를 꼽았다. 둘 다 인류학 서적으로 원시 부족들이 남녀 공동으로 육아를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양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여성을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주체였다. 아버지의 육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먼저 아기를 낳은 마을 선배로부터 지혜를 전승받기도 하는 삶, 참 오랜만에, 누군가의 삶이 부러웠다." (101쪽)

그러니 그가 육아 휴직을 하고 적극적으로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육아를 하며 기록을 잘해 놓았는가 하는 걸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주변에 8월 초 아이를 낳고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하는 예술가 부부가 있다. 이들은 용감하게 집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도 하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두 사람 모두 두문불출하며 갓 태어난 아이를 열심히 돌보고 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그들만의 신념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그런 이 부부가, 특히 남편이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책이 바로 <두 번째 페미니스트>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생아에게는 아빠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게 있어요.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오직 엄마만이 젖을 줄 수 있거든요.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정말 무력감이 느껴져요. 그런데 서한영교 씨가 책에 쓴 아빠에게 품이 있다는 말이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그래, 젖은 나오지 않지만 나에게는 안아줄 품이 있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와 소통도 되는 것 같고, 실제 제 품에서 잠이라도 들면 엄청난 기쁨이 되죠."

▲ 서한영교 씨와 아들 서로. /아르테
▲ 서한영교 씨와 아들 서로. /아르테

사실 한국 사회에서 서한영교 씨나 이 예술가 남편처럼 신생아를 같이 돌볼 기회가 있는 남성은 드물다. 아이가 생기면 여성은 노동 시간을 줄여 육아에 힘쓰고, 남성은 생계를 위해 노동시간을 늘린다. 육아에서 남편의 역할이란 '아빠가 돈 많이 벌어 장난감 많이 사줄게'로 요약된다. 이는 아직도 '아이는 저절로 큰다'는 말을 하는 남성들이 있는 이유다.

"아기가 나오니 열심히 돈 벌어야겠다는 결심보다는, 마음을 다해서 아내와 아기를 돌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가능하면 육아휴직을 써. 1년 동안 쓰는 게 어려우면 최소한 100일이라도 써야 해. 아이는 물론 아내에게도 100일 동안은 전폭적인(!) 돌봄이 필요하더라. 나는 그 100일 동안 정말 대단한 경험을 했지." (241쪽)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그가 선택한 것은 늘 가장 어려운 길이었다. 그가 부딪힌 세상의 문턱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아빠'라는 이름으로 해내고 있다.

"저는 애인의 젖 앞에서 언제나 두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중략) 첫 번째 사람들이었던 애인과 아이를 대신해서 이 순간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애인과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빈칸을 마지막 날까지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것이 아버지로서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윤리임을 인식하며 지내겠습니다."

책 제목인 두 번째 페미니스트란 결국 '아빠'의 다른 이름이었던 거다.

아르테. 312쪽.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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