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박홍순 지음
▲ 〈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박홍순 지음

새치 염색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삐죽삐죽 나온 흰머리를 보며 어제도 이 말을 했던가. "나도 이제 늙나 봐." 습관처럼 내뱉지만 이건 정말 진심이 1%도 담기지 않은 관용구 같은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인간'의 범주에 '내'가 포함이 됐던가.

"나이는 한 살씩 먹는데 노년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한 번 핀 꽃은 언젠가 시들고 아침이 밝으면 밤이 기다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어쩐지 노년이란 '인간'의 운명일 뿐 '나'의 운명 같지는 않다."

박홍순 작가의 <나이 든 채로 산다는 것은>의 뒤표지에서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뭔가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삶의 시작은 곧 죽음으로 향해가는 출발선이다. 너무 염세적인가.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자. 노년은 누구나 미래에 당도한다. 나이 든 채로 살아가야 할 시간은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필연에 가까운 영역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왕성했던 시절과는 분명히 다른, 나이 든 채로 살아야 할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다. 이미 노인 인구 비중이 14%인 고령사회에 근접했다. 한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자살률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노인도 그만큼 많다.

이러한 극단적 사례를 떠나서도 한국에서 노인으로 사는 일은 괴롭고 외로운 시기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저자는 '늙음'이 '낡음'으로 오해되는 세상에 아직 살아보지 않은 모든 삶을 싱그럽게 여기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노인 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한국이 노인을 위한 나라로 변화하는데, 나이 든 채로 살아가기에도 나쁘지 않은 문화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노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노인의 역할과 노동, 불안과 우울 등 현실적으로 맞닥뜨리는 삶의 문제에서 출발해 노년기의 특성과 직접 연관된 죽음에의 태도, 자살 문제도 중요하게 다뤘다. 감성 또는 몸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사랑과 성도 노인의 행복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다. 통계와 이론, 노인을 들여다보는 문학과 미술, 인문학 고전 등을 발췌해 분석적으로 활용했다.

나이 든 채로 산다는 것, 나이 든 채로 죽는다는 것, 나이 든 채로 사랑한다는 것 등 총 3부로 나뉜 소제목 하나하나가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용이 마냥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노인 혹은 인간의 생애 등을 담은 미술 작품을 함께 들여다보듯 이야기하고 사유하도록 이끌어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문학작품 속에 드러난 노인문제, 세대 갈등 등을 통해 노인의 구체적 삶과 고민에 대해 친근하게 접근한다.

'쌓여가는 시간에 자존을 더하는 황혼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고민과도 일맥상통한다.

오늘의 노인이 행복할 때 우리의 미래 역시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 살아보지 않은 나이도 살아볼 만하다는 희망이 있어야 오늘이 즐겁지 않겠는가.

"행복은 오직 찾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일차적으로 항상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현실 인식 위에서 오늘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과거의 반복적 삶과는 다른 전망을 찾는다. 비로소 외적인 의무가 아니라 자기 행복이 주요 관심사로 등장한다. 인간에게 행복을 실현하려는 노력은 삶 자체의 의미와 곧바로 연결된다. 특히 노인이라면 더욱 절실하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더욱 날마다 자기 행복에 충실할 필요가 생긴다. 노년기는 마무리가 아니다. 아직 건강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출발이고, 쇠약해진 육체라면 정신 활동을 통해 다른 전망을 꿈꿔야 하는 시간이다." (211쪽)

웨일 북스. 286쪽.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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