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니 몸이 절로 적응
짐 정리·돌잔치 준비 분주
베트남 친육아 환경 그리워

어떤 경험은 강물에 부유해 떠내려가고, 어떤 경험은 커다란 바위가 돼 물길을 바꿔놓는다. '베트남살이'라는 경험은 그 중간 어디 즈음. 내 생활이 달라질 정도는 아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분명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한국이 정말 좋아졌다. 음식이 입맛에 딱 맞다. 아, 다이어트는 끝났다.

◇한국 재적응기 = 귀국하자마자 꽤 바빴다. 주인 없는 집 문앞에 쌓인 신문처럼 할 일이 널브러져 있다.

먼저 엄청나게 늘어난 짐 정리를 했다. 애초 짐을 다루는 원칙은 이랬다. 최소한으로 사고, 최대한 버리기.

하지만 살다보면 어디 그렇게 되는가. 돌아오는 베트남 공항에서 수하물 30㎏ 초과. 300달러를 넘게 냈다. 짐 정리는 쉽지 않았다. 한국을 떠날 때 겨울이었으니 겨울옷 정리까지 해야 했다.

사실 아직도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곧 겨울이 올 것 같다. 몇 달만 버텨볼까 싶기도 하다.

아참,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결이가 수족구병에 걸렸다. 한국에서 유행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방심했나 보다.

병원에 갔는데 결이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단다. 출국기간 자동으로 건강보험 급여정지가 됐는데, 깜빡하고 해제하지 않았다. 전화 한 통(국민건강보험공단 1577-1000)으로 잘 처리했다. 결이 수족구병도 심각하지 않아 금방 나았다.

결이 돌잔치 준비도 했다. 돌사진 촬영, 성장 동영상 만들기, 답례품 고르기 등등 선택할 게 너무 많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난관은 연락 돌리기다. 결혼식 때도 그랬지만 나에게는 최고 어렵다. 누가 정해주면 좋겠다. 어떤 행사에 누구까지 연락을 해야 하는지. 이런 거.

복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달부터 어른들 말대로 '돌도 안 된' 딸을 어린이집에 맡겼다. 적응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잘 지낸다. 이쯤 되면 결이가 순한 아이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 결이 첫 번째 생일을 기념하고자 돌 사진 촬영을 했다. 서서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 결이 첫 번째 생일을 기념하고자 돌 사진 촬영을 했다. 서서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예전엔 몰랐던 것들 = 이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변했을 뿐. 무심히 바라보던 풍경이 눈에 필터를 끼운 듯 아름답게 보인다. 모든 건 마음의 문제였던 게다.

'이제 살 것 같다.'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얘기다. 오전 6시께 김해공항에는 여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처음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다. 베트남에서는 매사에 긴장한 채로 경계하며 살아야 했는데.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단 사실에 안심이 된다.

베트남에 있을 때 '운전'이 가장 하고 싶었다. 아파트 주차장 구석에 고이 세워둔 차로 달려갔다. 내가 주차한 장소가 맞는데, 네이비색 차량은 없고 회색 차가 서 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배터리가 방전되지는 않았다.

운전석으로 향했다. 왼쪽에 있는 게 브레이크 페달이었나 액셀 페달이었나. 걱정도 잠시. '몸이 기억한다'고 했던가. 운전대를 잡으니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발이 바쁘게 움직인다.

베트남 도로와 비교하면 한국 도로는 은쟁반처럼 매끈하다. 싱싱 달리니 레이서가 된 기분이다. 속이 뻥 뚫린다.

베트남에서 꽤 다양한 한국 음식을 먹었다. 닭 강정, 떡볶이, 족발, 감자탕, 자장면 등 원하면 뭐든 먹을 수 있었지만 항상 몇 퍼센트 부족했다. 그게 바로 '고향의 맛'이지 싶다. 어느 가게를 가나 내가 먹고 싶은 '딱 그 맛'을 맛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 비행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했다. 내려야 하는데 결이는 아직도 꿈나라다.
▲ 비행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했다. 내려야 하는데 결이는 아직도 꿈나라다.

◇아이들 천국 베트남 = 한국에 온 첫 달에는 그저 좋았다. 둘째 달에 들어서니 베트남에서 누리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든다. 이런 날이 오다니.

베트남 사람들은 아이를 정말 좋아한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누구라도 배려를 한다. 아기 식탁이 없는 곳을 못 봤다. 노키즈존은 당연히 없다.

한 번은 식당에서 아이가 울어 밖으로 나가자 직원이 데리러 왔다. 아기가 더우니 에어컨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 울음소리에도 누구 하나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가 없다. 오히려 웃는 얼굴로 아이를 함께 달래고 있었다.

한국에서 결이와 함께 갈 점심 장소를 알아보려고 검색을 했다. 검색창에 '창원 아기 식탁', '창원 카페 노키즈존'을 검색하다 울컥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출산율이 0명대라는 기사를 봤다. 혼인율이 낮은 원인도 있겠지만 기혼 여성 중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으로서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베트남 사례는 아니지만 남편이 독일에 있는 팀장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오전 10시 반에 출근을 한다고 했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오느라 그렇단다.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 전 어린이집 원장님이 복직하면 결이가 몇 시에 등원하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오전 7시 반은…. 좀 이른가요?"

◇대장정을 맺으며 = 베트남살이를 하면서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지 궁금했다. 그 과정을 공유하며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소개하고 싶었다. 더불어 베트남을 경험하게 될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전하고 싶었다. 잘 전달됐기를 바란다.

이번 연재를 시작하자 '육아휴직 중인데 회사에서 기사를 쓰라고 한 거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전혀 아니다. 내 경험을 이렇게라도 기록하고 싶은 욕심에 자발적으로 벌인 일이다.

마지막 편을 쓰다가 문득 한 여성 리더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붙는 '여성이라서'라는 꼬리표가 싫어 120%, 150% 노력을 했는데, 그게 후배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혹시나 육아가 쉬워 보일까 봐 걱정이 된다. 내 지인이야 '육아도 힘든데 글도 쓰다니 대단하다'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아기 키우면서 글도 쓰고, 할만한가 봐'라고 볼지 모르겠다.

실제로 절대 그렇지 않다. 내 발등을 찍은 내가 원망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감을 할 때면 남편은 퇴근 후 저녁 시간 독박 육아를 맡았다. 주말에 취재를 해야 하면 온종일 혼자 딸을 보거나, 딸을 안은 채로 나를 쫓아다니며 취재 보조 역할을 했다. 또 베트남 현지 취재원 역할도 톡톡히 했다.

결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더 힘들다. 한시도 몸을 떼려 하지 않는다. 집안일은 엄두도 못 내고 딸만 바라보기에도 에너지가 모자라다. 글 쓴다는 핑계로 덜 안아준 것이 아직도 많이 미안하다.

글을 마치며 끝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과 건강하게 지내준 딸 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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