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로 포장한 광기 선연
리스트 서정적 작품 편곡
서늘한 분위기 극대화해

피해자 명단에 또 한 명의 작곡가가 추가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이 이렇게나 공포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니,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하여 곡을 처음 접한 이라면 그 선율이 귓가에 스칠 때마다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라 몸이 움츠러들 듯하다.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병적인 집착, 그 모순적 잔인함을 보여준 영화라면 <미저리>가 먼저 떠오른다. 이 영화가 눈이라는 자연적 장벽을 높이 쌓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장 속으로 대상을 가두었다면 영화 <마담 싸이코>에서는 도심,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라 할 수 있는 뉴욕의 한 평범한 가정집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상자 안으로 우리를 끌고 가 숨통을 조여 온다.

◇섬뜩한 친절

뉴욕의 한 고급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 그녀는 1년 전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지금은 아버지를 떠나 절친인 에리카와 함께 뉴욕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분실한 듯한 핸드백을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 그녀의 악몽이 시작된다. 위험할 수 있다는 룸메이트의 현실적인 조언을 뒤로하고 가방의 주인공 집을 찾아간 프랜시스는 따뜻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하는 '그레타'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 들어선 프랜시스는 이후 계속해서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가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함께 저녁을 준비 중 우연히 열어 본 찬장에서 똑같은 핸드백 여러 개를 발견한 것이다. 더욱 섬찟한 것은 가방마다 누군가의 것으로 보이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는 것. 이제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급히 그 집을 빠져 나온 프랜시스는 그레타와 거리를 두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레타는 영화의 제목 그대로 '마담 싸이코'로 변해 간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전화와 문자, 그도 모자라 일터 앞 길 건너편에 서 하루 종일 가게를 응시하는 그녀. 심지어 집 문 앞까지 찾아와 다그치니 프랜시스의 일상은 엉망이 되어 간다. 경찰에 신고해 보지만 속수무책이며 이젠 식당 안까지 들어와 일터를 뒤집어 놓는 지경. 그리고 알게 된 그녀의 비밀. 파리에서 음악을 공부 중이라던 딸은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났으며 프랑스인인 줄만 알았던 그녀는 사실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헝가리인으로 이미 출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이에 친구의 조언대로 잠시 뉴욕을 떠날 거란 소식을 전하는 프랜시스. 하지만 그레타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집으로 프랜시스를 납치, 자신의 딸을 벌 주던 작은 상자 안으로 그녀를 밀어 넣는다.

▲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그리고 시작된 감금 생활. 피아노 뒤에 감춰져 있던 작은 방이 그녀가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것이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실패. 이제는 줄에 포박되어 방에 갇히게 된 프랜시스에게는 작은 희망마저 사라진 듯 보이며 이 과정에서 손가락을 잃은 그레타가 그 절단면으로 주삿바늘을 꽂아 넣는 장면에선 몸서리가 인다.

한편 뉴욕을 찾은 프랜시스의 아버지는 딸이 살던 아파트를 찾아오지만 친구 에리카만이 어리둥절해할 뿐이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사설탐정을 고용해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 그리고 마침내 그레타의 집을 찾은 탐정. 메트로놈의 도움을 받아 프랜시스가 감금된 방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제 곧 벗어나는구나 하는 순간 어느새 총총발로 다가와 찔러 넣은 그레타의 주삿바늘에 탐정은 허무하게 무력화되고 (춤추듯 총총거리며 다가오는 장면은 최근 본 영화의 장면 중 가장 섬뜩했다) 이때 총격으로 생긴 구멍이 매워지듯 모든 희망의 출구가 막혀버린 것 같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 젊은 여성이 그 집을 찾아 온다. 그레타가 지하철에 일부러 두고 내린 핸드백을 들고서 말이다. 프랜시스를 대체할 새로운 희생양. 하지만 그녀는 프랜시스의 친구 에리카다. 위험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단서를 찾아 지하철을 하염없이 헤맸을 그녀. 과연 그녀는 이 지독한 사이코로부터 친구를 구해낼 수 있을까?

◇명곡의 변신

영화 전반을 관통하며 흐르는 음악이 있다. 바로 헝가리의 대표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의 걸작 '사랑의 꿈'. 리스트는 어려서부터 세상을 놀라게 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한다. 이에 빈에서의 최초 연주 당시 열광 어린 소동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재능에 경도되어 연주회에 참석한 베토벤조차 대단한 녀석이라 칭찬하였다 하니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그의 주요한 음악사적 업적이라면 교향시라는 음악적 형식을 완성했다는 것과 쇼팽, 바그너 등 훌륭한 음악가들이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 등을 들 수 있겠으나 그래도 역시 피아노라는 악기를 떼어 놓고 논할 수는 없는 듯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표현이 바이올린에 있어 '파가니니'라면 피아노에 있어 '리스트'가 적용될 것이다. 이에 리스트가 남긴 위대한 피아노작품으로는 '2개의 피아노협주곡', '헝가리 광시곡', '피아노소나타 B단조',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라 캄파넬라'가 포함되어 있다), '순례의 해' 등이 있겠으며 영화에 흐르던 '사랑의 꿈' 또한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이며 어쩌면 서정성과 대중성에서 리스트의 대표 인기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랜시스와 그레타의 첫 만남, 그레타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장면(물론 피아노 뒤 지옥 같은 밀실이 감춰져 있다)에서 아름답게 연주되며 이후 영화의 전편에 흘러 나온다. 하지만 장면의 분위기에 맞도록 음산하게, 그리고 느릿하게 편곡되어 절묘한 음악적 효과를 거두는데, 어떤 장면보다도 프랜시스가 납치되던 날,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희미하게 보이는 그레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읊조림은 '사랑의 꿈'을 '사랑의 악몽'으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곡, 영화의 후반 변화된 분위기에 맞춰 이제 장난 아니죠 하듯 애절하면서도 장중하게 흘러나오는 선율이 있으니 바로 17곡의 '헝가리 광시곡' 중 2번(Ungarische Rhapsodie No. 2)이다. 이 곡의 도입부는 마치 '사라사테'가 작곡한 '치고이너바이젠(집시의 노래)'의 도입부와 닮은 듯 처연하며 이후 이어지는 자유로우면서도 경쾌한 반전은 헝가리 민속무곡의 기본적인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차르다슈'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집시적 리듬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니 꼭 들어봐야 할 인류의 유산이라 하겠다.

▲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유럽 여행 중 들른 헝가리 부다페스트.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경이 되었던 아름다운 그곳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었다. 헝가리 국민들의 정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우울함(Gloomy)'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99)가 있다. 고향 헝가리를 떠나 낯선 땅 뉴욕에서 살던 '그레타',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과연 그러한 정서를 핏속에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방인에 대한 차가운 시선과 밀어냄이 사랑과 우정에 목마르게 했으며 그러했기에 집착했고 마침내 허무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영화 포스터에 명확한 진리인 듯 적힌 '함부로 친절하지 말 것'이라는 문구는 불편하다. 친절을 베풀다 곤경에 처하게 되는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보여주는 글이지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이 '그레타'를 만들어 냈기에 그렇다. 이에 조금은 어설프거나 경솔하더라도 친절한 것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함부로라도 친절한 것이 아무래도 함부로 무례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함부로 무관심하거나 무례하지 말 것.'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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