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서 자란 작가, 조부모와 만든 추억 담아
누구나 있을 법한 가족사·다정한 문장에 위로와 공감

책방을 하면서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한 가지는 '책을 한 권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을 추천해주고 싶으신가요?'이다. 자주 듣는 질문임에도 매번 깊이 고민하게 되고 대답을 하고 난 뒤에도 늘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은, 늘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책 추천이다.

질문을 하는 분들 가운데는 책은 읽고 싶지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거나, 반대로 좋은 책이 너무 많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면 추가적인 설명, 예를 들어 '어떤 책이 요즘 많이 판매되었고, 이 책은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와 같이 오직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알려 드린 뒤 참고하여 원하는 책을 구매하도록 권한다.

그러나 간혹 추천하는 책을 통해 책방의 색깔과 주인의 취향, 더 나아가서는 수준을 이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손님들도 있다. 이 경우에는 온전히 주관적인 느낌과 책에 대한 이해된 설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특수성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하는 책에 대한 감상평이 동시에 나의 안목과 수준을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추천'이라는 행위를 감히 내가 해도 되는 것인지 스스로를 검열했고 그 과정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마주할 때면 자괴감이 들어 속상하기도 했다.

어려운 숙제이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고 돌이켜 보면 수고스러웠던 만큼 보상도 있었다. 그 질문들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나에게 책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추천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책들에는 자연스러운 공통점이 있었고 그로 인해 책에 대한 내 나름의 기준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힘들었을 뿐. 그저 내가 즐거웠던 것, 좋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자 모든 것이 쉬워졌다.

책을 읽는 행위는 일종의 노동이다. 시간을 내야하고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전자기기로부터도 멀어져야 한다. 혼자 해야 하는 고독한 행위이면서도 육체적인 피로까지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을 읽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이러한 가성비 떨어지는 투자를 하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즐거움'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추천한 책을 읽는 동안 손님들 역시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우리 책방에 오는 손님들, 그리고 책을 추천해주길 바라는 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

▲ 책 <나의 두 사람>. /장참미 시민기자
▲ 책 <나의 두 사람>. /장참미 시민기자

바로 김달님 작가의 <나의 두 사람>이다. '나의 모든 이유가 되어 준 당신들의 이야기-나의 두 사람'은 현재 창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달님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이다. 조손가정에서 자란 작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 추억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했다. 당시 <마이 그랜드마더 그랜드파더>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은 2017년 카카오 브런치 '브런치 북 프로젝트' 금상을 수상하며 2018년 봄, 단행본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놓인 50년, 그 좁혀지지 않는 시간을 조급해 하며 이 책을 썼다'고 소개한다. 작가의 말처럼 책 속에는 작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크고 작은 추억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잊지 않으려는 노력, 희미해지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작가가 성장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사랑스럽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 책의 모든 내용이 아름다운 장면으로만 채워져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자라는 동안 건설 노동자로 일하시는 할아버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주 작아지고 약해졌으며, 두 번의 큰 수술을 겪어야 했다. 다리가 불편해 바깥 활동이 불편했던 할머니 역시 깜빡깜빡 순간을 잊는 날 수가 늘었고 행동할 수 있는 반경 역시 줄어들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늘 두렵고 낯선 변화였으며 더 어린 자녀인 작가에게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일반적'이라는 모습과 기준 안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면 작가는 당황했고 '평범한 어른이 되기까지의 조부모들의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서로의 약함에 가슴 아파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를 주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 쓰인 말처럼 우리는 늙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월이 우리를 통과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작가 역시 '친숙한 곳에 죽음을 맡겨 놓은 사람들처럼' 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아득해지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그 모든 순간들이 슬프지 않게 느껴지는 까닭은 글로 만나는 작가의 추억들은 이미 그 마음속에서 정화되어 나온 기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담담하고 나긋한 어조로 써 내려간 문체는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작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한한 기대와 사랑을 기반으로 무럭무럭 자랐고 아픔이나 슬픔도 온전히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두 사람>을 읽는 동안 그 사실을 함께 대견해하고 공감하기에 슬프지 않을 수 있다.

▲ 1940년생 송희섭(왼쪽) 씨와 1939년생 김홍무 씨. 두 사람은 부부이자, 책 <나의 두 사람>을 쓴 김달님 작가에게는 마음의 부모다. /나의 두 사람
▲ 1940년생 송희섭(왼쪽) 씨와 1939년생 김홍무 씨. 두 사람은 부부이자, 책 <나의 두 사람>을 쓴 김달님 작가에게는 마음의 부모다. /나의 두 사람

'가끔 궁금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자라 무엇이 되길 바랐을까. 할아버지는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무렵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우연히 올려다본 밤하늘의 달이 어찌나 밝은지, 그 달처럼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세상으로 나를 불렀다. …세상엔 나보다 훨씬 잘 쓰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만큼 쓰는 사람들은 더욱 많았다.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으면서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지역 방송국 막내 작가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작가라기보다 방송 일을 배울 겸 막내 스태프 역할에 더 가까운 일들을 했다. 방송국에 취직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할아버지는 방송국 로고와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난 네가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어떤 말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남는다던. 내겐 할아버지의 그 말이 그랬나 보다. …언젠가 내 글이 누군가의 세상에 작은 빛을 켜 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서른 해 전,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바람은 이루어질지 모른다.'

누군가의 이토록 온전하고도 오롯한 신뢰를 받는다는 것,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서로의 모습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격려적이고 아름답다.

왜 책을 읽느냐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김달님 작가의 <나의 두 사람>과 같은 글을 읽기 위해, 그런 글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할 것이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고 묻는다면 인생의 쓰고 달고 아픈 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삶, 그리고 그 과정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그에 더해 남을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책이야말로 나를 생각하게 하고, 쓰게 하고,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란 작가는 할아버지의 바람처럼 이 책으로 세상을 환히 비추고 있다. 그 빛이 조금 더 멀리 가 닿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작은 책방에서 김달님 작가의 <나의 두 사람>을 추천한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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