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한글 번역 이후
옛 '이수(水)정'과 혼동
후대 오해없게 바로알려야

함안군청에서 진동 방향으로 약 2.4㎞ 지점에 이르면 수백 년 된 노거수로 뒤덮인 연못과 정자가 있다. 이 곳은 사계절 경치가 좋아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들의 웨딩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매년 음력 사월초파일을 전후한 전통 불꽃놀이로 경향 각지에서도 찾을 만큼 명소가 돼 있다. 이런 명소에 회자되는 일수정, 이수정, 삼수정이 있다. 정자가 있는 연못이 세 곳에 있어서 차례로 부른 것이라고 전해져 왔다. 그중 이수정은 함안면 괴항마을의 무진정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지만, 일수정과 삼수정의 위치를 두고는 여항면, 함안면, 가야읍, 군북면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렇게 의견이 분분해진 것은 일수정, 이수정, 삼수정의 수(藪)가 흔히 쓰이는 대로 '늪', '연못'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고 거기에 맞추어 정자가 있는 연못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수정, 이수정, 삼수정은 정자가 있는 연못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수(藪)는 '덤불', 덤불이라고 여길 만큼 큰 나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1889년부터 1893년까지 함안군수를 역임한 오횡묵이 지은 <함안총쇄록>에 1889년 5월 6일 황정의가 군수에게 "일수정(一藪亭)은 말산동에 있고, 이수정(二藪亭)은 괴항동에 있고, 삼수정(三藪亭)은 객사 앞에 있다"고 보고한 것이 있다.

이 구절만 보면 수(藪)를 정자가 있는 연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1587년 편찬된 <함주지>와 비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책에는 삼수정을 "객사 대문 밖 십 보쯤 되는 곳에 있고, 세 나무가 솔밭같이 서 있어서 삼수정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삼수정이 곧 삼수정(三樹亭)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세 나무가 솔밭같이 서 있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수(藪)의 의미가 '덤불', 큰 나무를 이야기하는 것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수정은 말산동의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 정자, 이수정은 괴항동의 큰 나무가 두 그루 있는 정자, 삼수정은 객사 앞의 큰 나무가 세 그루 있는 정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확한 연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고 대부분 사람은 수(藪)를 연못이라고 믿고 있다. 어째서 와전된 이야기가 그토록 널리 퍼지고, 또 근거가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 함안 이수정 내 성인문. /조현열 기자
▲ 함안 이수정 내 성인문. /조현열 기자

그 원인 중 하나는 <함안총쇄록>이 2003년, <함주지>가 2009년 한글로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인데, 그 이전에는 일반인이 정확한 내용을 인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잘못 알려진 이야기라도 입소문을 타고 무성해졌을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무진정 인근에 이수정(二水亭)이라는 정자가 실재했기 때문에 이수정(二藪亭)을 무진정이 아니라 이수정(二水亭)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함주지> 2권에는 이수정(二水亭)에 대해 "군의 북쪽 오리에 있다. 한강 선생(함주지를 지은 정구 함안군수를 말한다)이 휴식하던 곳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수정(二水亭)은 "두 갈래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지은 정자"로 해석되는데 군의 북쪽 오리(五里) 되는 곳에서 남쪽에서 흘러오는 큰 물줄기와 괴항마을 앞을 돌아 나오는 물줄기가 만나기 때문에 이수(二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수정(二水亭)이 무진정의 연못을 지척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수정(二藪亭)이 곧 이수정(二水亭)이라고 혼동이 생기게 되었다. 한자가 다르고 그 의미하는 바도 분명히 다르지만, 한글이 같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라 할 것이다.

먼저, 이수정(二藪亭)이 이수정(二水亭)이라는 오해가 생기고, 거기에 수(水)의 의미가 물줄기가 아니라 연못이라는 오해까지 더해지면서 이수정(二藪亭)이 정자가 있는 연못 중 두 번째라는 와전이 굳어진 것이다.

▲ 매년 사월초파일 전통불꽃놀이가 재현되는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이수정(二藪亭). 조선시대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무진 조삼(趙參) 선생이 여생을 보내고자 만든 무진정(無盡亭)의 다른 이름이지만 여러 역사서가 한글로 번역되면서 함안군수 한강 정구가 인근에 세운 이수정(二水亭)과 혼동돼 오랫동안 오해를 받고 있다. /조현열 기자
▲ 매년 사월초파일 전통불꽃놀이가 재현되는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이수정(二藪亭). 조선시대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무진 조삼(趙參) 선생이 여생을 보내고자 만든 무진정(無盡亭)의 다른 이름이지만 여러 역사서가 한글로 번역되면서 함안군수 한강 정구가 인근에 세운 이수정(二水亭)과 혼동돼 오랫동안 오해를 받고 있다. /조현열 기자

이런 오해를 부추긴 것이 '함안낙화놀이'의 옛날 이름이었던 '이수정 낙화놀이'다.

무진정 연못에서 개최되었던 낙화놀이는 매년 사월초파일을 전후해 군민의 안녕과 일 년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전통 불꽃놀이였는데,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으로 중단돼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것을 지난 1985년에 복원하면서 '이수정 낙화놀이'라는 이름표를 달았고, 2000년대에는 이수정 낙화놀이 보존회까지 구성되었다. 이 명칭은 무진정이 곧 이수정(二水亭)이라는 오해를 널리 퍼트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무진정은 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로 등록돼 있다. 조선 명종 22년 무진 조삼 선생의 덕을 추모하고자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낙화놀이를 하는 장소가 '무진정'이라는 함안 조씨 문중의 반발로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고, 2008년 경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함안낙화놀이'가 정식명칭이 되면서 '이수정'이라는 이름은 없어졌다.

아직도 '이수정 낙화놀이'로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것은, 한 번 각인된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수정(二藪亭)의 본래 의미를 알리는 것이 요원한 이유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했던 시기에 와전된 것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후손에게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무이다.

이수정(二藪亭)은 이수정(二水亭)이 아니라는 것, 무진정을 이수정이라고 할 때는 연못이 아니라 큰 나무를 떠 올려야 한다는 것. 오래전 자취가 사라진 이수정(二水亭)이 1976년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무진정을 대신할 수 없도록 알리는 것이 본래의 전근대 역사를 바로 지켜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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