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도 중요한 만큼
공공·민간 다양한 기록도
건강한 사회 구축에 꼭 필요
가치 공감받는 날까지 '아자'

요즘 들어 내 일상은 '쓰기'보다는 '읽기'에 치중해 오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그 음식이 주는 영양소를 몸이 필요하다고 보내는 신호니, 그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 비과학적인 말처럼, 내 몸도 지식을 축적하기보다는 소비하기 바빴던 내 생활에 따른 뇌가 보내는 신호이리라는 근거 없는 생각으로 '읽기'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이 읽기 몰두시간에 읽은 책은 '기록(관리)'에 관한 전문기술서가 아닌 운명처럼 손에 잡힌 '다양성'에 대한 여러 가지 글들이었다.

◇그동안 안다고 오해한, 실제로는 몰랐던 현실적인 일들

그중 인상적인 책은 김원영 작가의 <희망 대신 욕망>,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가족>, 그리고 예전에 읽었지만 다시 한번 복습한 <종자, 세계를 말하다>라는 책들이다. <희망 대신 욕망>이라는 책은 골형성부전증으로 태어나 사회가 장애인을 보는 시선과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생활환경에 대한 작가 개인적인 체험과 생각들이다. 작가는 장애인들을 헬렌 켈러나 스티븐 호킹 같은 역경을 극복한 영웅적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상을 보내는 필부필부(匹夫匹婦)처럼 장애인들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랐다. 이 책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장애인은 여러분들이 아니라 국회에 있는 썩어빠진 정치인이 장애인이다." 아마 나도, 독자들도 한번쯤 들어봤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작가는 이렇게 바꿔서 설명하고 있다. "여성들이 무슨 문제냐, 여성들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저 남자놈들이나 여자같은 자들이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익숙해져버린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책이다.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책은 '사랑의 매'는 세상에 없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폭력 중 가장 높은 비율이 가정에서 일어나는 학대이며 우리 사회는 이 관계에 대해 '천륜'이라는 틀 안에서 학대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을 '작은 사람'이라 생각하기보다는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해 종종 그 결말은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동반자살이라는 용어에 대해 '아이 살해 후, 자살'이라는 용어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며 인권보호를 위해 가정폭력에 대한 공권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외 부모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정상가족이 아니라 미혼모(부)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책은 〈종자, 세계를 말하다>라는 책이다. 책은 농업의 산업화로 종자는 단일화되고 그에 따라 농민은 산업에 종속돼 선택할 기회를 박탈하고 종국엔 빚 때문에 자살하게 되는 문제를 말한다. 종자주권은 피할 수 없는 과제며 종자 다양성은 필요성을 넘어 절박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 말한 세 가지 책들은 내용은 다르지만 다양성의 중요성과 세상에서 소외되기 쉬운 사실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과 과제를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통해 나와 사회를 성찰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책들은 실존과 실증의 문제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책이다.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일들,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내게도 그런 곤란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작은 것들의 회생, 이어지는 불편과 어려움

기록의 힘을 말하는 지면에 뜬금없이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책들에서 말한 내용들이 필자가 지속적으로 말해온 '기록(관리)'과의 유사성이 있어서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직업, 일, 형태, 사람 등 모든 것이 다양화되어 있다. 그 속에 힘이 센 것, 약한 것 등으로 또 나뉘게 된다. 그러나 그 힘이 편향적으로 하나에만 몰릴 때 사회의 균형은 깨지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는 발생한다. 때문에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소수자들에 대한 의견표출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작은 것(소수자들의 의견표출)들에는 장애인, 한부모, 미혼모, 성소수자, 농업, 그리고 나의 업인 기록관리 업무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기록관리의 영역은 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때문에 관리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몇몇에 의해 독점 운영되었다. 시장은 좁았고 가치는 떨어졌다. 우리는 그동안 기록에 대해 세계기록유산 같은 큰 것들만 생각했지, 공공과 민간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일반적인 기록들은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실과 사건들은 잊히고 사라졌다. 앞으로만 나아가길 원했던 '경제성장'이라는 힘의 편향성에 의한 희생양 중 하나인 셈이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나)그러나 그것에 대한 반성이 조금씩 일어나면서 우리는 그동안 힘의 논리에서 밀렸지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회적 가치, 다양성, 역사인식 등 사회신뢰의 기초를 이루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에 힘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힘없는 작은 것들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불편은 동반될 수밖에 없고 그것의 동력은 상실된다. 예컨대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위해 농성을 하면 처음에는 이해하다가도 그것이 나의 불편(열차 지연 등)으로 다가오면, 사건의 정당성은 사라지고 시민의 피로도는 빨리 상승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록관리도 틈새시장에서 회생을 갈구하는 중이다.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 두 곳이나 만들어지는 쾌거와 더불어 공공과 민간의 기록문화 확산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말은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누군가는 공격당하게 된다. 조그마한 소리를 내는 것조차 겪어보지 못했던 과거가 있으니, 조금은 이해는 되나 서글픈 것도 사실이다.

◇목표의 정확성과 과정의 정의로움, 무소의 뿔처럼 가라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덕분에 고민도 깊었지만, 상황을 성찰하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가?'라는 목표에 대한 탐구와 '나의 전문성은 드러내어 말할 수 있는가?'라는 개인적인 성찰까지, 다행히 결론은 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얼마 전 창원 모 교회 목사님이 이단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단에 현혹되는가?" 그 답은 종교가 생활이 되지 못하고 '한방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했다.

세상에 한방에 되는 건 없다. 그것은 교만이고 혹여나 됐다하더라도 기초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의 인식개선, 종자주권의 필요성, 아이들의 행복과 다양한 정상가족, 그리고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신뢰구축과 중요성 공감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필수요소다. 목표가 정확하고 과정이 올바르면 무소의 뿔처럼 가면 된다. 단, 한방에 되는 건 없으니 길은 계속되고 발걸음마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볕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극복도 하나의 과제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말을 빌려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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