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분위기 영향으로 수도권 비해 소속감 떨어져
성과 중심 대학평가 탈피, 교수-학생 상호작용 권유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금현섭(가명·22) 씨는 대구의 한 사립대 중국어학과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가 지난 4월 전역했지만, 복학하지 않고 자퇴 후 다시 대학입시를 치를 계획이다.

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졸업하고 재수를 했던 그는 '평소보다 수능성적이 안 나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한 후회가 남은 데다 동료 학생들의 무기력한 분위기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학교가 ○통' '머리 빈 애들이 온다'고 말하며 후배들에게 장난식으로 자퇴를 권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진짜 아니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학교 자랑도 많이 하고 자신감 있게 대학생활 하는 걸 보고 큰 차이가 있다고 느꼈어요. 과잠(학과명이 들어간 윗옷)도 수도권 대학 친구들은 편하게 잘 입고 다니는데, 내 대학 동기 중엔 아예 신청 안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부산지역 국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의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근무 중인 소현희(가명·28) 씨도 "대학시절 인(in)서울 명문대와 지방대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4학년 때 고려대에서 계절학기 학점교류로 수강인원 60명쯤 되는 경영학 조직행동론 강의를 들었는데, 학생들이 토론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강의실 의자도 대화하기 좋도록 원형으로 배치돼 있고, 강사님이 프로젝트를 주며 서로 모의 협상을 해보라고 할 때도 학생들이 잘 따르더라고요. 우리 학교에서 그렇게 수업하면 진행이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 분위기 자체가 소극적이고 그런 과제가 주어진 적도 없거든요."

지방대의 수업이나 학내 활동이 대체로 위축된 분위기를 보이는 것은 성적이 좋고 의욕적인 학생일수록 '편입 탈출'에 마음이 쏠려있는 경우가 많은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

서울지역 대학을 목표로 편입을 준비 중인 대구지역 사립대 3학년 김성우(가명·21·공대) 씨는 "편입을 위한 성적관리와 시험 준비 때문에 학과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엠티(MT)나 오리엔테이션, 축제와 같은 학생활동에는 잘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다니는 대학 전공수업을 들어보면 교수와 학생 모두 열정을 잃은 것 같고, 강의와 과제의 양과 질에서 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 소속감과 만족도 낮은 학생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운영하는 '대학알리미' 사이트에 따르면 2018년 전국 4년제 대학 일반편입 지원자 수는 14만 6000명이다.

지난해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일반편입 경쟁률은 고려대 12.6 대 1, 서강대 75.43 대 1, 성균관대 75.79 대 1, 연세대 16.39 대 1, 중앙대 20.49 대 1, 한양대 26.03 대 1 등으로 매우 높다. 여기에는 중복 지원과 서울에서 서울로 편입하는 경우, 전문대생의 4년제 대학 편입 등이 포함돼 있는데, 한 편입학원 관계자는 전체 지원자의 절반가량이 지방대에서 서울지역 대학으로 편입을 원하는 인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회적 평가가 더 나은 대학'으로 편입하는 학생들의 행렬은 대입에 이은 편입 학원의 번성을 낳았다. 회원 수가 48만여 명에 이르는 네이버 커뮤니티 '독하게 편입하는 사람들'에서 운영자가 추천하는 주요 편입학원이 20개 업체이고, 규모가 작은 곳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분야 대표적 학원의 하나인 김영편입학원 관계자는 "(우리 학원만 해도) 전국적으로 수강생이 1만여 명"이라고 밝혔다.

지방대생들이 자기 학교에 만족하지 못한 채 소극적이고 침체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관련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방대학의 교육실태 및 성과 분석(2014)' 보고서에서 한국 대학생의 학습과정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방대생의 대학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25점으로 수도권대의 3.33점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학교선택 만족도도 지방대 2.29 대 수도권대 2.53, 전공선택 만족도는 지방대 2.70 대 수도권대 2.86, 대학 소속감은 지방대 3.44 대 수도권대 3.60 등으로 모두 차이가 있었다.

지방대 학생은 스스로 역량과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자기인식' 점수도 낮았다.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하는 '자기역량 인식'(지방대 3.24~3.60점, 수도권대 3.39~3.64점), 진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평가하는 '진로성숙도'(지방대 3.97~4.43점, 수도권대 4.07~4.67점), 목표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는 '생애목표의식'(지방대 3.20~3.78점, 수도권대 3.22~3.83점) 등에서 지방대생들은 수도권 대학생들보다 자신을 낮게 평가했다.

지방대생의 심리적 위축과 소극적 성향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대학생활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양민옥 숭실대 사회복지학 강사의 논문 '지방대학교 대학생으로 살아가기(2015·청소년학연구)'는 지방대생의 대학생활을 '열등감을 갖고 대학생활 시작', '열등감과 적응 사이의 갈등', '외적인 지지가 대학생활에 도움이 됨' 등 3단계로 정리했다.

◇대학 평가방식 바꾸고, 교수·학생 상호작용 긴밀하게

지방대생의 자부심을 높이고 능동적 대학생활을 이끌기 위해 필요한 대안은 무엇일까. 한국교육개발원 '지방대학의 교육실태 및 성과 분석' 보고서는 지방대를 무조건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 인식을 걷어내고 각 대학의 특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평가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교육지원, 취업 프로그램, 창업지원 등에 있어 수도권대와 차이가 없거나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지방대들이 있지만 사회가 입학성적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지방대생은 대학에서의 역량 향상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지 못한다"며 "획일적 성과기준이 아닌 대학과 학생의 역량 향상에 초점을 둔 평가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능점수·학생 충원율·취업률과 같은 정량지표에만 매달리지 말고, 각 대학이 설정한 핵심역량 향상·특성화·교육과정 혁신 등 교육의 질과 다양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별히 '교수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구대 김민희 교수는 "지방대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는 학생들은 교수와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전공·교양수업과 비교과 프로그램 등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가진 경우가 많다"며 "교수가 학생의 학습과 대학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좋은 경험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칭찬과 격려가 부족하고 소외된 느낌을 받았던 학생들에게는 경험과 성장의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 핵심 역할은 교수가 맡아야 하고요. 예를 들어 독서동아리에서 교수와 1년 정도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면 학생들 역량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전공수업을 강의실 밖에서 체험 위주로 진행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이처럼 교수는 학생에게 어떤 좋은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수업을 재구성하고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합니다. 또 대학은 고효과 프로그램의 성과를 분석·공유하고 과감한 재정 투자를 통해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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