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 노략질하던 여우골 궁지 몰리자
앞잡이 같은 마름들이 마을 어지럽히네

흰머리산 기슭을 터전으로 삼은 호랑골이 요즘 왁자하니 떠들썩하다. 물 건너 섬마을 여우골 이장이 생트집을 잡고 나섰기 때문이다. 장에 내놓는 여우골 물건을 호랑골 사람들이 사려면 제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몇 가지를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호랑골 사람들은 물건을 엮어 짜는 데 쓰이는 신기한 북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 호랑골 북은 옷가지를 만드는 피륙에서부터 곡물을 담는 돗자리나 가마니 등 씨줄 날줄로 엮어 짜는 모든 것에 드나들어 맵시 있는 상품이 되게 만들었다. 이 북을 만드는 데는 특별한 나무와 날줄 사이를 매끄럽게 드나들도록 바르는 기름이 필요했다. 호랑골이나 다른 마을에서도 이 나무와 기름이 나기는 했지만, 가장 많이 싸게 만드는 여우골 것을 사다 쓰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만든 북을 또 여우골 사람들이 사다 쓰니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여우골 이장이 뜬금없이 생트집을 잡는 것은 속내가 따로 있겠지만, 빌미는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마을이 생겨날 때부터 호랑골과 여우골은 징검다리 몇 건너 이웃이지만 사이가 좋지 못했다. 궁벽하게 갇힌 섬인지라 넉넉한 호랑골과 곰실마을을 건너보며 호시탐탐 뭍을 노렸다.

툭하면 징검다리를 건너와 들곡식을 풋바심으로 훑어가거나 밭곡식을 서리했다. 그러다 들키면 오히려 논밭 주인을 상하게 만들기도 일쑤였다. 임진년에는 대놓고 곰실마을을 털러 간다며 7년 동안이나 호랑골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다.

호랑골 살림이 거덜나고 있던 100여 년 전. 이장은 무능했고 보좌하던 마름들은 마을 일보다 제 잇속 채우기에 바빴다. 제 마을 지킬 재물로 호의호식을 누리다 물이 범람하고 사태가 나자 호랑골에 눈독들이던 이웃 마을에 도와 달라 부탁한다. 곰실마을과 노소면 저 큰 물 건너 양기면까지 얼씨구나 하고 발톱을 숨긴 채 제가 먼저 도와주마 개떼같이 달려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제힘으로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마을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데, 이장과 마름들은 제 가진 것 지키느라 편을 가르고 힘 센 마을로 옮겨 줄타기를 했다.

약삭빠른 여우골은 틈을 노렸다가 제 편으로 끌어들인 마름을 앞세워 호랑골을 여우골에 합쳐버린다. 경술년 8월 29일의 일이다. 점점 기세등등해진 여우골은 다른 마을까지 노략질하기 시작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건달패를 보내 뺏었다. 일손이 달리면 호랑골 사람들을 끌고가 새경 한 푼 없이 부렸고 여자들은 건달패 수발을 들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우골이 물러가고 양기면과 노소면의 대리전으로 호랑골은 또 아수라장이 되고, 아래 위뜸은 서로 불공지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자기가 원인 제공한 이웃의 난장판에 어부지리를 얻어 다시 부유해진 여우골에게 주먹다짐으로 차지한 호랑골 새마을 이장이 수작을 걸었다. 호랑골 아수라장에 광 팔아서 벌었으니 개평을 내놓으라했다. 그동안 패악을 눈감아 주고 징검다리도 새로 놓겠다 하고 구걸한 셈이다.

한데 여기서 사달이 났다. 50년이 지나 머슴살이 새경과 건달패 수발에 대한 제대로 된 배상과 진정한 사과를 하라 했더니 장터에 내는 물건으로 보복에 나섰다. 진정한 사과와 배상은커녕 아직도 여우골의 변방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호랑골이 북에 쓰이는 나무와 기름을 제 것으로 쓰고 여우골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자 되레 몰린 쪽은 그들인데, 100년 전의 마름 같은 자들이 호랑골을 어지럽힌다. 위뜸과 손잡고 이웃에 휘둘리지 않는 호랑이가 되자는데 고양이로 남아 버린 생선 가시나 핥자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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