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스콜 시즌·다른 문화 탓 고생…관광은 '하늘의 별따기'
그럼에도 4개월간 색다른 일상 속에서 도움 준 이들 있어 감사

4개월짜리 시한부 베트남살이를 마칠 때가 왔다. 시간은 흐르기에 언젠가 작별할 순간과 마주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이 더 빨리 오기를 바랐다. 내 의지로 앞당겨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모든 이별을 대할 때처럼 '끝'이란 말 앞에 아쉬움이 반딧불처럼 피어오른다.

◇생활인으로 산다는 건 = 간간이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아직도 내 안부를 물어주다니. 그들의 훌륭한 성품과 인내심에 박수를 보낸다.

하나같이 걱정을 하면서도 재미있을 것 같단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보기에 내가 겪는 시공간의 변화가 흥미로울 수 있겠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결이가 자는 틈에 빛이 잘 드는 창가에서 우아하게 원고를 쓰고, 주말이면 에메랄드빛 바닷가에 누워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상상을 했다. 이제 보니 무슨 허황한 소린가 싶다. 지난 4개월을 돌아보면 힘든 기억뿐이다.

▲ 호찌민 시내 신호를 기다리는 오토바이 행렬./김해수 기자
▲ 호찌민 시내 신호를 기다리는 오토바이 행렬./김해수 기자

많은 여행을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여행은 처음이다. 하루는 남편과 그 이유를 분석해봤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생활인이라는 사실'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생활은 현실이고, 현실은 전쟁이었다.

소음을 알람 삼아 기상을 하면 결이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마침 베트남에 올 즈음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한국이었다면 나보다 훨씬 솜씨 좋은 분들이 엄선한 재료로 만든 '영양 만점' 시판 이유식을 이용했을 텐데, 또르르…. 내 끼니도 챙겨 먹어야 하고, 쌓인 설거지, 빨래도 해야 한다. 따님이 기기 시작했으니 바닥 청소도 소홀히 할 수 없지.

결이가 응가를 하면 뒤처리를 하고 울면 안아주고 잠이 오는 것 같으면 재워야 한다. 이런 하루를 7번 반복하면 일주일, 30번 반복하면 한 달인 생활을 했다.

일과가 너무 촘촘해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즐길 틈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 즐거운 건 꽤 단순한 이유 때문일 수 있겠다. 여행할 때는 빨래, 청소, 설거지, 요리를 안 해도 된다는 것. 한다 해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 대신 평소 하지 않던, 가령 사진 찍기나 다른 여행객과 대화 혹은 자신과 대화 같은 일에 집중한다는 것. 익숙한 일상과 색다른 경험. 이 둘이 차지하는 비중이 몇 대 몇이냐가 여행과 생활을 가르는 셈이다.

남편이 했던 바닷가 여행 공약도 공약(空約)이 될 뻔했다. 일이 우선이었기에 미루고 미루다 여름방학 숙제하듯이 다녀왔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건 여행이나 생활이나 마찬가지다.

▲ 호찌민 시내에 있는 좌판 풍경. 이곳에는 길거리 음식이 발달해 있다./김해수 기자
▲ 호찌민 시내에 있는 좌판 풍경. 이곳에는 길거리 음식이 발달해 있다./김해수 기자

◇여행길에서 얻은 선물 = 이번 일정은 여행이 아니라 '삶'에 방점이 찍혔다. 그러나 삶 또한 큰 의미에서 여행이라. 자고로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곳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그 무언가와 만남이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온통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15평 남짓 공간에서 딸과 단둘이 보냈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더라. 세상에, 이건 아닌데.

육아 상식을 보태자면, 6개월 아기는 정신적·육체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다시 말해 5개월까지 아기와 동일인이라 할 수 없다.

이전까지 밤에 잘 자던 아기가 몇 번씩이나 깨서 대성통곡을 하고, 8㎏ 육중한 몸을 엄마에게서 한시도 떼놓으려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이즈음 이도 난다.

5개월까지 울음 정도가 레벨 1이라면, 6개월부터는 레벨 7, 8, 그 이상이다. 달래지지도 않는다. 아이가 울고 싶은 만큼 울고서야 그치니 환장할 노릇이다. 더욱이 여기에는 정말 힘들 때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짐 싸들고 한국으로 도망가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다. 운 좋게 딸과 동갑인 자녀를 둔 엄마들을 만났다. '엄마 친구 구해요'라는 말에 모인 이들이다.

휴직 전까지 기자로 산 6년. 때로는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겪지 않았다면 좋았을 여러 상황에 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받은 크고 작은 상처가 쌓여 벽을 이루었고, 사람을 사귀는 일이 참 어렵고 무섭다는 생각이 마음에 박혔다. 잘 해주는 사람을 더 경계했다.

그런데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이들이 단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유로 나에게 선뜻 자기 것을 건네는 경험, 조건 없는 호의가 얼마 만인가. 어찌 보면 나는 겨우 몇 달 후에 떠날 사람인데 말이다. 이들 덕에 예전에 사람 좋아하던 내 모습을 조금은 찾은 듯하다. 베트남에서 얻은 고마운 선물이다.

언제가 되더라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 호찌민 거리 풍경. 이곳 사람들은 식물을 가까이에 두고 즐긴다. 덩굴 식물이 외관을 휘감은 건물을 종종 볼 수 있고, 베란다를 정원처럼 가꿔놓은 집들도 많다./김해수 기자
▲ 호찌민 거리 풍경. 이곳 사람들은 식물을 가까이에 두고 즐긴다. 덩굴 식물이 외관을 휘감은 건물을 종종 볼 수 있고, 베란다를 정원처럼 가꿔놓은 집들도 많다./김해수 기자

◇이제야 보이는 풍경 =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지나가는 몇몇 한국인들 얼굴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3개월쯤 지나자 나도 그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든 제멋대로인 베트남 문화가 싫었다.

3월까지는 화창한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 이어졌다. 4월이 되자 우기가 시작됐다. 스콜 시즌이다. 한 번에 30분에서 한 시간가량 비가 내리는데 일단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세숫대야로 붓는다는 표현도 모자라다. 살수차에서 물대포를 쏘는 느낌이다. 세찬 바람은 빗방울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무력하게 한다. 천둥소리는 웅장한 울림에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다.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나뭇가지가 꺾이고 도로 곳곳이 잠긴다. 이런 기후 탓에 지은 지 10년이 안 된 아파트 외관이 20년은 족히 넘어 보인다. 일기예보를 보면 매일 비가 온단다. 그러나 몇 시에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있는 곳에서 옴짝달싹 못 할 정도로 비가 내릴지,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도 될 정도만 올지 알 수 없다. 이쯤 되면 약속 시간을 지키는 건 내 몫이 아니다. 하늘의 뜻이다.

▲ 호찌민 대표 관광지인 '벤탄 시장' 내부 모습. 현지인이 말하기를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부르는 값의 70%는 깎아야 한단다./김해수 기자
▲ 호찌민 대표 관광지인 '벤탄 시장' 내부 모습. 현지인이 말하기를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부르는 값의 70%는 깎아야 한단다./김해수 기자

'정말 너무하네' 싶을 만큼 묵직하게 바닥에 꽂히는 빗줄기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답답하게 여긴 베트남인의 느긋함이 이런 환경에서 살기에 최적합한 모습은 아닐까. 이곳은 매일 스콜이 내리는 기간이 1년 중 절반이다. 싱긋한 봄비, 시원한 여름비, 반가운 가을비, 촉촉한 겨울비를 '즐기며' 살아온 우리가 감히 평가하기 어려운 본능적인 습성이 아닐까.

그토록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주장하는 글을 썼건만. 베트남에서 생활하며 미간을 찌푸렸던 장면들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마지막 날까지 순탄치 않았다. 길고 긴 하루를 보내고 기진맥진한 채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남편과 마주 보며 웃었다. '여기는 베트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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