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매주 연재하던 글 묶어
시마다 해설 더해 풍성한 전달

이혜선 시인은 지난 5월 마산 시의 도시 선포 11주년 기념식에서 처음 뵀다. 함안 출신인데, 쟁쟁한 문인을 많이 배출한 동국대 국문학과를 나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고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기도 하다.

시인은 기념식에서 '역사의식에서 불이(不二), 사랑까지 - 나의 시 세계'란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그 내용을 기사로 쓴 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어느 날 책을 한 권 보내왔다.

▲ 〈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이혜선 지음
                             ▲ 〈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이혜선 지음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도서출판 지혜, 2019년 5월), <세계일보>에 매주 연재하던 '이혜선의 한 주의 시'를 한데 묶은 것이다.

시 한 수마다 시인의 설명이 붙었다. 설명이라고 해도 딱딱하지는 않고, 때로 설명 그 자체가 시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다.

예컨대 서정춘 시인의 짧은 시 '죽편(竹篇)·1- 여행'에 달린 해설을 보자.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이 짧은 시에 시인은 '마침내 여름이 오리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어디에 가 닿으려고 푸른 기차를 타고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중략) 그대의 뜰에 푸른 나무가 자라고 향도로운 꽃이 피면 새는 노래하고 벌과 나비는 살아있음의 향연을 마음껏 즐기리니, 그때 우리는 대꽃 피는 마을에 가 닿아도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으리." (31쪽)

시인이 매주 고심해서 골랐을 시들을 읽는 재미도 크다. 울림이 큰 시가 많다.

"자궁엔 지진이 없단다, 아가야/다시 자궁으로 들어가거라/ 아직 너는 물이니 몸 한껏 구부리면/ 양수로 흘러갈거야 (중략) 아가야, 아직 눈 뜨지 말거라, 놀라지도 말거라/ 어미가 둥글게 몸 구부려 단단한 지붕을 만들 동안/ 내 뼈가 산을 받아내고 콘크리트 절벽을 밀어낼 동안/ 너는 자궁에서 부르던 옹알이, 탯줄에 걸고/ 발길질 하고 놀거라" (72쪽. 정영주 시인 '단단한 지붕' 중에서)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서 있을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은 걸레를 생각하면" (81~82쪽. 김사인 시인 '바짝 붙어서다' 중에서)

이런 시들을 읽고 곰곰이 생각을 다듬었을 시인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을 것 같다.

좋은 시를 읽고 혼자만 느끼고 즐기기에는 너무 송구한 생각이 들었다는 저자의 말이 정겹다.

지혜. 272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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