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없이 남발한 동상, 역사·조형 논란
장소·역할·의미에 대한 물음 계속돼야

동의하든 비판하든 우리나라 인물 동상 가운데 숫자가 가장 많은 동상은 이순신 장군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에 12개 동상이 설치되어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4점이 더 설치되었다.

그리고 지금 창원시 진해에 대형 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을 두고 찬반논쟁이 일고 있다.

진해에는 지금 2점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설치되어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순신 장군 동상은 1952년 6·25전쟁 당시 진해 유지들과 해군이 기금을 모았고, 노산 이은상이 글을 짓고, 소전 손재형이 글을 쓰고 윤효중이 조각을 했다. 건립을 기념해 열린 축제 마당이 '군항제'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15년 해군사관학교에 또 한 점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해군사관학교 동상은 학교에 갇혔고, 윤호중의 동상은 작가 친일문제로 방치되면서 이제는 선양회의 군항제만 남았다.

국내 동상 문화는 1966년 박정희 정권 때 관제성 조직으로 설립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활성화되었다. 이 때문에 원칙 없이 역사 위인들 동상 건립을 남발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1960~70년대 독재정권 권력 계몽 수단으로 악용됐던 동상들의 역사성·조형성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판에 박힌 영웅 조형물 틀에 갇혀 있는 문제와, 짧은 공기에 맞춰 급조되는 문제, 대상 선정이나 건립 방향 등에서 미학적인 공론화가 미흡하다는 문제를 남기고 있다.

대부분 거액을 들여 추진되었지만 단기간 뚝딱 세워지는 바람에 역사성·예술성·기록성을 못 갖췄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또 정치적 상징성 논란도 여전하다.

오늘날 우리 눈에 익숙한 역사적 위인의 기념비적 동상은 19세기 유럽 근대 국민국가가 정립되면서 주요 도시마다 광장에 자국을 대표하는 위인들의 동상 건립 바람이 일어나면서다. 국가적 근대성을 과시하는 시각적 표상이 되었다.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는 넬슨 기념동상이 있고, 미국 수도 워싱턴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 장군의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중국에도 마오쩌둥 주석을 비롯한 많은 동상이 있고, 베트남에는 호찌민 주석 동상이 있다. 광화문 앞에는 김세중이 제작한 이순신 동상이 있다.

기념 조형물이 한 시대나 사회의 정신적인 이념을 역사적 인물로 상징화해서 시대감각을 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도시 기념비가 되어 볼거리가 되기도 하고 모멘텀이 되어 사소한 자료까지 챙겨 기념관이 만들어지고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창원에 남겨진 위인이나 동상들은 볼거리가 얼마나 될까? 즐길거리는 또 얼마나 될까? 기념거리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3·15와 10·18 후예라고 하지만 민주화를 기념하기엔 오브제(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작품에 새로운 느낌으로 상징화)가 부족하다.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이 산업화시대 주역이었지만, 기념하기엔 역시 오브제가 부족하다. 이런 이유에서 사고 전환도 필요하다. 진해의 많은 왜의 흔적과 군국주의 일본 흔적을 복원하려면 크고 강한 오브제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도시 미래가치를 해양에서 찾으려고 하는 창원시의 가장 강력하고 가장 쉬운 모누멘툼(기념물·유적)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최소한 기념조형물이 왜 그 장소에 있어야 하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며, 설치된 공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