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할머니 증언 이후
1992년부터 빠짐없이 집회
27년 동안 사죄·배상 외쳐
인권·평화 배움터 거듭나

"일본 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도대체 왜 (일본이)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결국 나오게 되었소. 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1991년 8월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이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1992년 시작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14일로 1400회를 맞는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열린 수요시위는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집회를 취소하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항의 집회를 추모 집회로 대신한 경우를 빼면 매주 수요일 빠짐없이 이어져 왔다.

27년여간 계속된 외침 속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하나둘 스러져갔지만, 일본 정부의 전쟁 범죄 인정과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울림은 날이 갈수록 커져간다.

◇27년 이어온 한결같은 외침…"일본은 공식 사죄·법적 배상하라"

매주 수요일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노란 나비' 물결이 가득하다.

손수 만든 손팻말에 '오늘이 마지막 수요일이기를', '할머니들의 잃어버린 청춘을 찾아주세요' 등의 문구를 쓴 사람들은 남녀노소, 국적 등과 관계없이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1992년 1월 36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수요시위를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이같은 집회가 단일 주제로 30년 가까이 이어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 4년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위안부 소녀상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열린 12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연대시위. 당시 행사에 참석한 김경애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 4년 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위안부 소녀상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에서 열린 12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연대시위. 당시 행사에 참석한 김경애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당시 회원 30여 명은 '정신대 사실 진상규명' 등이 적힌 광목옷을 입고 일본대사관 주변을 돌며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 인정과 공식 사죄, 피해자에 대한 배상, 희생자 추모비 건립 등을 요구했다.

첫 집회 때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 참석하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7번째 집회가 열리던 1992년 2월 26일 용기를 내 자신들이 겪은 역사를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수요시위는 이듬해인 1993년 100회를 넘긴 데 이어 2002년 500회, 2011년 1000회를 돌파했다. 이제는 옛 일본대사관 앞 거리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도 1000회 집회를 맞아 세워졌다.

수요시위의 외침이 거듭될수록 아쉬움은 더해간다.

집회가 시작했을 당시 60대였던 길원옥(1928년생)·이용수(1928년생) 할머니는 이제 아흔을 넘었다.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 앞장서며 기념비적 인물로 꼽혔던 김복동 할머니는 올해 1월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총 20명. 이들의 평균 연령은 91세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최근에는 할머니들의 연세가 많고, 한 분씩 돌아가시면서 (많은 분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할머니들의 울림이 전 세계 시민들에게 울려 평화와 연대의 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 배움터이자 평화 교육의 장"

수요시위를 이끌어 온 정의기억연대(정대협 후신)는 할머니들의 외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넘어 전 세계의 인권·평화 문제로까지 대상을 확장한다고 말한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수요시위는 할머니들로부터 외롭게 출발했지만 최근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인권적인 행동에 맞서 참여하는 장(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무총장은 "그간의 시위를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의 인권 문제라는 점을 전 세계에 알렸고, 국제적 인권 기준을 세우는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참혹한 전쟁 피해의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나비기금' 등을 통해 콩고민주공화국·우간다·코소보 등 내전국의 전시 성폭력범죄 피해자들과 연대해 왔다.

한 사무총장은 "수요시위는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미래 세대가 함께 참여해 인권을 배우고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74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정오에도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1400번째 정기 수요시위와 '제7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가 열린다.

'피해자의 미투(Me Too)에 세계가 다시 함께 외치는 위드 유(With You)! 가해국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라'를 주제로 열리는 이날 집회는 한국과 일본 등 전 세계 10개국 34개 도시에서 함께 진행된다. /연합뉴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