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 이듬해 전투 소환
위인 아닌 민초 중심 이야기 전개
현 시국 맞물려 관객 발걸음 줄이어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 연합군 부대가 일본군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 학창시절, 봉오동과 홍범도에 깜장칠을 해가며 외웠던 기억은 선명하다.

역사 교과서 속 단 몇 줄. 우리는 잊고 있었다. 그곳엔 나라 잃은 서러운 백성이 있었고,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던 이름 모를 선열들의 고되고 험난한 투쟁사가 있었다는 것을.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죽음의 골짜기, 봉오동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대한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의 전투를 소환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 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려고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사격 실력은 어설픈 대신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역사 속 인물들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왠지 알아?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를 영화화했지만 처연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다. 여러 매체와 책을 통해 이미 듣고 보았지만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일제의 야만적이고 잔혹한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감독은 영화 온도를 끌어올린다.

"조선도 알고 일본도 아는데 왜 형만 몰라? 여기가 마지막 조선이야!"

쟁기를 들었던 손에 총을 들고, 어제는 마적이었으나 오늘은 일본군과 맞서는 독립군이 된 전국 각지의 이름 모를 투사들의 절박한 이야기는 작위적 상황과 과잉의 감정을 군데군데 드러낸다. 하지만 그럴수록 영화가 지향하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봉오동 전투의 주인공은 홍범도 장군 한 사람이 아니라 독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들고일어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민초들이다. 그들이 지켜낸 나라, 그 염원이 이뤄낸 독립군 최초의 승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진다.

"똑똑히 지켜보고 네 말을 듣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대로 알려. 너희가 어떤 짓을 했는지."

당연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설정된 몇몇 상황들에 되레 현실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현 시국과 맞물려 통쾌함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영화는 마지막, 독립신문의 한 줄 한 줄을 확대하며 고증을 통한 상업 영화의 탄생 과정을 설명한다.

무거운 총을 들고 폭탄이 터지는 험준한 산자락을 쉴새없이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에 임하는 그들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몰입감 높이는 배우들

<말모이>에서 우리의 말을 지키고자 각성해가는 소시민을 연기했던 유해진(황해철 역)은 이번엔 칼을 들고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역을 맡아 특유의 친근함에다 묵직함을 더했다.

비범한 사격 실력으로 웃음기를 빼고 오로지 자신이 맡은 임무를 향해 돌진하는 류준열(이장하 역)은 당시 독립군들의 절실하고도 절박함을 표현했다. 마적 출신 저격수 조우진(마병구 역)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영화에 숨통을 틔우며 인간미를 보탠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도 독립에 대한 의지 하나로 서로 챙기고, 감자 하나를 수십 명의 동지와 나누며 웃을 수 있었던 그 마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마음이 아닐까?

어느 때보다 반일 감정이 높아진 지금, <봉오동 전투>는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가 있다.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컷.

◇다큐 영화 〈김복동〉

지난 8일 개봉한 송원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해방 후에도 계속되는 아픔을 담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이야기다.

<김복동>은 드라마를 배제하고 사실에 기반을 뒀다. 해설은 배우 한지민이 맡았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16세 때 중국에 끌려가 고통받았던 기억을 고백하며 시작된다. 그 삶은 이야기를 굳이 만들고 보태지 않아도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한 굴곡과 눈물을 갖고 있다.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한 김복동 할머니의 27년간의 기나긴 여정을 담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움츠리며 살았던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변해간다. 김복동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를 막으려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될 희망을 위한 싸움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두 영화 모두 도내 멀티플렉스 상영관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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