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거스르지 않게 지은 건물 매력적
비움·느림·공동성 존중한 '도시 침술'

도시 재생 패러다임이 요즘 달라지는 추세다.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마스터플랜' 형식에서 탈피해 지자체가 주민과 함께 필요한 작은 부분을 개선해나가는 '도시 침술' 형식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도시 침술'이란 말은 승효상 건축가가 저서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언급했다. 그는 "도시 침술적 방법은 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착오 없는 지혜로운 방식"이라며 "예산이 많이 들지 않으며, 무엇보다 과정이 민주적이고 흥미진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도시 침술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패러다임이라서 그 결과가 어떤 효과를 나타내게 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주도로 쇠퇴하는 지역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해 경제, 사회, 물리적 환경을 개선시키려는 게 사업 목적이다. 지자체와 주민이 참여해 주민들이 원하는 도시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도시 재생 뉴딜사업은 도시 침술법과도 유사한 듯하다. 승효상 건축가는 '도시 침술법은 기능·효율·속도 같은 용어 대신 비움·공유·풍경·느림·공동성이라는 단어가 키워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일랜드의 도시 개발 시스템은 도시 침술 키워드를 아주 잘 접목했다 싶다. 서남쪽에 있는 모허 절벽(Cliffs of Mohur)은 영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촬영지로,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절벽 풍광을 보러 세계인이 찾는다. 주목할 것은 절벽보다 절벽 입구에 있는 방문자 센터다. 절벽에 다가가기 전까지는 방문자 센터(모허절벽 기념관 포함)가 있는 줄 예상하지 못한다. 절벽 풍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벙커(동굴) 속에 방문자 센터를 지었다. 처음 방문자 센터를 설계할 땐 절벽 앞에 우뚝 솟은 건물을 계획했지만, 주민들과 행정이 4년간 토론을 벌인 끝에 벙커 형식으로 결론지었단다. 모허 절벽 위용은 그대로 살아 있고, 방문자 센터와 기념품 판매관(역시 벙커 형식)엔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묘수'라고 본다.

아일랜드 주요 도시 속에 역사가 담긴 골목과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한 모습도 도시 침술의 묘미다. 동남쪽에 있는 킬케니는 노어 강둑에 자리한 성에서 대성당까지 비좁은 길을 따라 중세 건축물이 줄지어 있다.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중세 시대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다. 남쪽 지방인 코크는 현대적 쇼핑거리와 잉글리시 마켓이 있고, 역사 골목이 따로 있다. 국내 <비긴어게인> 팀이 버스킹을 한 골웨이(서쪽)도 인구 10만의 어촌 도시이지만 골목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국제아트박람회도 열린다.

현재 밀양은 내일·내이동, 가곡동 도시 재생 사업을 하고 있고, 창녕도 부곡온천관광특구와 영산로터리, 창녕 교하리 등에 도시재생사업을 하려 한다. 창원시도 마산해양신도시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무엇보다 느림·풍경·공동성을 존중하는 도시 침술을 활용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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