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이루어지면서 ‘소재(재료)’가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작은 소재 하나 때문에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거대한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첨단소재를 국산화하자는 국민적 지지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부·기업·연구소 할 것 없이 소재 연구개발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재분야 연구개발자들도 한껏 의욕이 충만하고 있다. 하지만 메마른 들판의 들불처럼 번지는 격정적인 성원에, 재빠른 소재 국산화로 보답할 수 있을지 부담스럽기도 하다. 태생적으로 소재 연구개발은 매우 긴 시간을 요구하는 인내의 기술이다. 음악의 빠르기로 표현하면 소재는 ‘조용하고 느리게’의 아다지오(Adagio)이다. 급진적이지도, 경쾌하지도 않은 소재 연구개발의 아다지오를 국민이 끝까지 믿고 응원해 줄 지, 성과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소재 연구개발에 쉽게 지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지금까지 우리 산업생태계 발전 원동력은 민첩성이었다. 조립·부품산업(세트산업)은 빠른 리듬과 박자로 잘 적응해 세계적으로 성공신화를 이룩했다. 반면 태생적으로 느린 리듬과 박자의 소재산업은 우리 산업생태계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소재가 필요한 세트산업은 국산 소재가 개발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었고, 잘 준비된 외국산 소재를 사용하여 효율성을 높여왔다. 결과적으로 국내 세트산업은 세계적 수준인데, 이를 떠받치는 첨단소재는 국외기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소재 연구개발은 왜 느릴까? 소재기술의 연구개발과 실용화 과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소재는 구조-특성-성능-조성-공정, 5개 변수 관계 규명에서 탄생된다. 소재 개발은 이들 5개 변수의 최적 조합을 찾는 과정이고, 기본적으로 물리·화학·수학 등의 기초과학 역량이 있어야 한다.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변수 간 최적조합을 찾는데 수 많은 실험·분석이 수반되고 있다.

둘째, 소재는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다. 소재는 품질이 우수하다고 사용되지 않는다. 제품이 요구하는 일정한 시간만큼 품질이 보장되는 이른바 ‘신뢰성’을 둬야 한다. 이러한 요구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신뢰성 시험에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셋째, 과다한 선행 투자비용과 비용회수 위험이 크다. 세트기업의 빠른 개발 템포에 맞추기 위해 소재기업은 수년에 앞서 선행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선행개발을 완료하더라도 개발된 소재가 제품에 채택되고, 그동안 들어간 비용이 회수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 때문에 자금 조달력이 취약한 중소형 소재기업은 선행개발을 수년에 걸쳐 도전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넷째, 사용자 보수성을 극복해야 한다. 새로운 소재 채택은 기존 생산기술·생산공정·제품설계 등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새로운 소재 도입에 따른 기술 학습과 기업 내 기술확산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추가 비용 때문에, 사용자는 기존 수요·공급 관계망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길 선호한다.

이렇게 힘든 소재 연구개발 과정은 일종의 진입장벽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면 진입장벽은 국산기술을 지켜줄 보호장벽으로 바뀔 것이다. 이제 우리 산업은 소재기술을 키울 수밖에 없는 운명과 마주했다. 소재 연구개발자의 끈기뿐만 아니라, 정부관료·정치인·국민 모두가 인내하고 응원할 때, 조용하지만 거대한 소재혁명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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