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휴가 보장 대상 제외
자율적 휴일 사용 어려워
16·17일 기본권 쟁취 투쟁

창원 택배회사 대리점에서 택배 배달을 하는 한모(49) 씨는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고 싶다.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 주 6일간 일을 하다보니 택배업을 한 뒤로는 한 번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

올해로 12년째 택배업을 하고 있는 한 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물품을 분류해 배송하고 나면 오후 7시를 넘겨야 퇴근한다"며 "만약 VIP고객사 물품이나 신선식품을 제때 배송하지 못해 본사에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문제가 된다. 배달할 물량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휴가를 가기 힘들다. 휴가를 가려면 다른 사람에게 배달을 맡겨야 하는데 부담이 너무 커서 휴가는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와 택배연대노조 등 택배노동자 기본권 쟁취 투쟁본부는 택배기사 휴식 보장을 위해 오는 16, 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자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ㄱ 씨뿐 아니라 대부분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휴가 갈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택배기사는 택배회사 대리점과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특수형태노동종사자여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연차유급휴가 보장 대상이 아니다.

택배기사 노동시간은 살인적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7년 서울지역 택배기사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5시간, 연간 노동시간은 3848시간에 달했다.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1인당 연간노동시간(1986시간·2018년 기준)보다 1862시간이나 많다. 이들은 대부분 '공휴일과 일요일을 제외하면 쉬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평균 작업량은 평균 253개(배송 187개, 집화 66개)로 통상 택배 하나당 2.2분에 배송해야 하는 등 노동 강도도 높다.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자율적으로 휴일을 정하면 쉴 수 있어 휴일을 쓰는 데 법적 제약은 없지만 업무구조상 쉬기가 쉽지 않다는 게 택배기사들의 주장이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배송물량이 쉼 없이 쏟아져 택배기사가 직접 다른 배송차량을 수배해 배송수수료 2배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등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휴가를 가기 어렵다"며 "여름휴가가 몰리는 8월은 배송 물량이 적기 때문에 택배사들이 결단해 16일과 17일 이틀만이라도 물량을 줄여주면 택배기사들도 휴가를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택배사가 택배기사들의 연차휴가를 보장할 의무가 없어 각 택배사들은 택배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택배기사들의 휴식 없는 노동이 구조적 문제인 만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택배 배달 과정은 소비자가 물건을 주문하면 쇼핑몰이 약정한 날짜까지 소비자에게 물건을 배달하도록 택배사에 주문하고, 택배사는 택배노동자에게 주문받은 물량을 배정한다. 구조를 보면 소비자가 택배노동자 휴가를 고려해 배송 지연을 이해하고 택배사와 쇼핑몰이 일정을 협의한다면 택배 없는 날이 생길 수 있다.

투쟁본부가 "택배사·홈쇼핑·온라인쇼핑몰이 동참해 달라"고 제안하는 까닭이다. 특히 투쟁본부는 지난 2014년 8월 14일 접수한 물품을 18일 배달하기로 고객사와 사전 협의해 휴가를 시행한 선례도 있는 만큼 택배노동자들의 요구 실현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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