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건조 표준계약서 없어
조선소 리스크 부담 가중

지난 2016년 국내 산업계에서 해양플랜트 표준계약서 작성을 발표하였지만, 하루 만에 번복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유는 국제 거래 관행에서 공정거래를 해칠 가능성이 있고 발주자의 반발이 클 것이란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염려는 여러 국내외 사례를 고려할 때 전적으로 사실과 다르다.

'국제컨설팅엔지니어링연맹'에서 작성된 국제표준계약서는 육상건설 및 발전설비 업계 전반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는 자국에서 해양플랜트 표준공사계약에 관한 최소한의 지침을 제공하는 'NTK 07' 등 산업표준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육상·해양을 막론하고 대규모 건설공사에서는 기본설계·상세설계를 발주자와 시공자 중 누가 수행하느냐 등에 따라 여러 종류의 다른 계약조건이 발생한다. 각각의 계약조건에 대해 표준을 정해 놓지 않으면 계약당사자 사이에서 사후 분쟁은 물론 힘의 논리에 따라 한쪽 이익이 다른 쪽의 리스크로 치환되는 제로섬 게임이 되기 쉽다.

아쉽게도 '국제건설공사표준계약(FIDIC)'은 해양플랜트 계약서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선박에서는 선급 규정, 해양플랜트에서는 발주자 측 입장에서 계약서 근간이 만들어져 왔다.

대규모 공사에 사용되는 계약서는 상상을 초월한다. 분량의 경우 많게는 큰 책장 두어 개를 빼곡히 채울 정도다. 해양플랜트 같은 경우 더 복잡하다. 현재 국내에서 해양플랜트 계약을 전공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몇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해양플랜트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2014년 공정위)'가 국내 조선소 하청업체 보호 목적으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해양플랜트 건조계약은 특수계약 형태이다. 계약된 품질의 설비를 기한 내에 완성한 다음 계약금을 제외한 잔여대금을 받고 인도하는 건조자(조선소) 책임이 훨씬 크다. 또한 표준선형이 없고 발주자와 설치해역의 특수성이 매우 강하다 보니, 지금까지 조선소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계약서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기술사양서 중요성을 인식하고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그래야만 조선소 입장에서 리스크 부담 범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필자가 2001~2010년 우리나라 조선소가 수주한 7기의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조사해 봤다. 당초 계약 시점 확정 물량에서 4~44%까지 추가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국내 해양플랜트산업 종사자들은 조선소 입장에서 가장 큰 리스크를 △계약 시점에서 기준이 되는 기본설계 품질 결함 △계약단계에서 검증 활동 소홀로 들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담보하고 조선소 입장이 반영된 계약 및 설계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기회는 잉여이익이 아니라 결국 리스크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제 국제화·지역중심주의를 아우르는 세계화의 룰을 우리 손으로 준비해야 한다.

인류가 바다에서 석유를 채취하기 시작한 것은 80년이 채 되지 않는다. 1980년대 수심 200m 이내 대륙붕이 해양자원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기술과 시장은 발전하고 있고 새로운 질서를 계속 만들면서 적응해 가고 있다.

우리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우리가 직접 해야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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