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교류모임 '사림153'
첫해 결과물 소책자 엮어
지역 문화·미술 관념 등
새로운 담론 형성에 한몫

다른 장르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미술계에는 기획과 작업과 비평이 골고루 어우러져야 전반적으로 활기가 돈다. 하지만, 경남 지역 미술계엔 전문적인 비평이 없다.

특히나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의 작업이나 기획을 평가받고 함께 토론하고 이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싶은 작가나 기획자들에게는 꽤 아쉬운 부분이다. 창작자들에게 비평이란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쓴 약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창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의 활동은 눈여겨볼 만하다.

2017년 1월 창원의 젊은 미술 작가들이 지역에 비평이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의창구 사림동 153번지에서 시작한 모임이다. 구성원에 변화는 조금씩 생겼지만, 몇 달에 한 번씩 벌써 2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 2017년 4월 23일 지역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이 심은영 작가 작업실에서 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 이날 이영준 큐레이터가 사림동을 찾아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림 153'은 최근 이 같은 방식으로 2년 넘도록 이어 온 모임 결과물을 소책자 형식으로 담았다. /경남도민일보 DB
▲ 2017년 4월 23일 지역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이 심은영 작가 작업실에서 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 이날 이영준 큐레이터가 사림동을 찾아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림 153'은 최근 이 같은 방식으로 2년 넘도록 이어 온 모임 결과물을 소책자 형식으로 담았다. /경남도민일보 DB

여전히 창원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점차 경남으로 대상 지역을 넓히고 있다. 모임은 매번 지역 작가 한 명을 섭외해 그가 지금까지 해 온, 또 앞으로 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질의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처음에는 주변에 친분이 있는 젊은 작가들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중견 작가도 섭외하고 있다.

사림 153은 최근 첫해 모임 결과물을 소책자 형식으로 제작했다. 감성빈, 이성륙, 박봉기, 정진경, 최수환 작가 편으로 모두 5권이다. 소책자 내용을 보면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모임을 진행하는지, 그 모임이 얼마나 진지한지 잘 알 수 있다.

▲ 지역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이 모임 결과를 기록해 발간한 소책자들. /이서후 기자
▲ 지역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이 모임 결과를 기록해 발간한 소책자들. /이서후 기자

작가 개인으로서는 모임에서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는 시간 자체가 이미 남다른 자극이 된다. 처음 그림을 시작하게 된 이유부터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두고 다른 작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도 평소에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청중들의 질문은 작업 재료에서, 좋아하는 다른 작가까지 다양하다. 예컨대 한국화를 그리는 이성륙 작가 편에 보면 창원이란 도시의 장점과 단점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렇다.

"창원은 아직 문화적인 발전이 많이 이뤄지지 않은 도시입니다. 창원만의 독립적인 색채와 역사성이 미비하고 창작자, 감상자, 이론가, 문화행정가, 미술 시장 등 문화 생태계에 필요한 요소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중략) 특히 창원은 고대 역사(가야)부터 희미하게 잃어버린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창원의 많은 단점이 거꾸로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름이 끊기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발견되고도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창원은 창원만의 자연 색채와 형태, 시간과 역동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와 가능성이 됩니다."

설치작업을 하는 최수환 작가 편에는 최 작가의 설치 작품이 개념미술에 가까워 쉽게 팔리거나 할 성질의 것이 아닌데, 생계를 위해 팔리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질문도 있다. 그 답은 이렇다.

▲ 지역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이 제작한 소책자 중 최수환 작가 편. /사림 153
▲ 지역 비평교류모임 사림 153이 제작한 소책자 중 최수환 작가 편. /사림 153

"저는 상업적인 미술과 순수 미술과의 영역을 크게 나누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잘 팔린다고 상업미술이고 안 팔린다고 순수 미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상황에 맞게 의뢰가 오면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만들고, 전시가 있다면 제가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만들 뿐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항상 있지만, 미술을 하는 이상 제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기록들은 지역 미술사적인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사림 153은 애초 모임을 기획할 때부터 이미 지역 작가 아카이빙(기록 보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통해 지역에서 좋은 기획자, 좋은 비평가가 발굴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