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조차 작전 수행하듯 분주한
쉼마저 일상의 연장으로 여기지 않는지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낯선 환경과 문화, 그리고 낯선 사람이 있는 곳에서 느끼는 설렘이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 자체가 주는 짜릿함에다 그동안 자신을 가둬온 많은 시선에서 벗어나는 일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비단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공항마다 낯선 행선지를 향해 떠나는 이들이 가득하다.

국외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유명 관광지는 한국인으로 가득하다. 웬만한 관광지에서 한국인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여기가 한국인지 국외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성급한 일반화일지 모르지만, 국외에서 만난 한국인은 누구보다 바쁘다.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 마치 작전을 수행하듯 움직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꼭 들러야 할 명소와 맛집 리스트를 빼곡하게 정리해 숨 돌릴 틈 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유럽배낭여행을 하고 있을 때다. 한 달 넘게 유럽을 돌아다니다 한인민박에 머문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니 아내가 유독 힘들어하는 게 아닌가? 한인민박은 남녀가 따로 방을 쓰는데 아내와 떨어져 지냈던 나는 잘 알지 못했던 사연이 있었다. 장기여행을 계획한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서두를 일이 없었고, 밤늦게까지 움직일 일도 그다지 없었다. 처음 나설 때부터 오늘 하지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된다는 식으로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방을 썼던 젊은 친구들은 큰마음 먹고 여행을 나섰던 터라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밤늦게까지 목표했던 일들을 마치고 들어와서는 다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 사이에서 아내는 내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여행을 떠나서도 고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일종의 직업병인데 여행 때마다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카메라다. 무거운 카메라를 끙끙 짊어메고는 피사체를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아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동은 '일'을 찾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아내 역시 불만을 털어놨다.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노을이나 멋진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싶은데 내 눈은 카메라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없는 한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어릴 적부터 쉼을 느긋하게 즐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탓일까?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늘 바쁘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한창이다. 다들 휴가계획을 세우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하지만, 휴가를 즐기기보다 전투처럼 치르고 나서 후유증을 앓는 경우도 많다. 치열한 경쟁에 익숙한 우리는 '쉼'마저 일상의 연장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의 휴가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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