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활동하던 예술가 3인 각기 다른 이유로 하동 정착
차밭길 순례·할머니 그림책 등 주민 참여 프로그램 마련·진행
지역예술과 교류 폭 확대해 지속가능한 문화생태계 꿈꿔

구름마는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지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정식 인가를 받았고 2년 뒤 전문예술법인으로 지정됐습니다, 지금은 하동군 악양면 악양생활문화센터(옛 축지초)를 수탁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죠. 구름마는 구름처럼 천천히 떠다니며 여행하듯 재미있게 살아보자는 뜻입니다. 전 우연히 구름마를 알게 됐습니다. 그들이 기획한 전시를 보고, 신박하다고 느꼈거든요. 무더운 여름날, 운전대를 잡고 하동으로 가는 길이 가벼웠습니다. 구름마에 어떤 스토리가 담겨있을지 궁금했거든요.

▲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구름마를 이끄는 세 사람. 왼쪽부터 양성빈 이사, 이혜원 대표, 전민정 실장. /김민지 기자
▲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구름마를 이끄는 세 사람. 왼쪽부터 양성빈 이사, 이혜원 대표, 전민정 실장. /김민지 기자

◇하동으로 모인 이유

올해 초 구름마는 정기총회를 열고 새로운 대표를 뽑았다. 조합원도 예술가 중심으로 재정비했다. 현재 조합원 수는 15명. 이 중 8명은 악양생활문화센터 내 구름마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혜원(50) 대표와 양성빈(39) 이사, 전민정(45) 실장을 만났다. 우선 그들이 하동에 터를 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 대표는 그림책 작가다. "서울에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자괴감이 들고 작업도 잘 안돼 힘들었다. 원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는 타입은 아닌데 최참판댁 아트숍을 찾아온 사람들 얼굴을 그려주고, 책을 팔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작가로서)그림책으로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행동반경을 넓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작가인 양 이사는 부모님 덕분(?)에 하동에 터를 잡았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부모님이 근거지를 서울에서 하동으로 옮겼더라"며 "도시생활서 느꼈던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은 줄어든 거 같다. 아직 악양마을 일원으로 완전히 녹아들지는 못했지만 나름 잘 정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 실장은 베테랑 문화기획자다. 과거 서울도시갤러리추진단 큐레이터, 문체부가 주관한 시장 문화프로그램 지원 사업 '문전성시' 기획자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구름마 이전 대표와의 인연으로 하동야생차문화축제에 몇 번 방문했었는데 재밌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풍광도 좋고. 사실 또 제 고향이 마산이고 아이들도 다 커서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 구름마가 수탁운영하는 하동 악양생활문화센터 전경. /김민지 기자
▲ 구름마가 수탁운영하는 하동 악양생활문화센터 전경. /김민지 기자
▲ 귀촌 예술인들과 지역 할머니들이 함께하는 '나의 삶, 시 그림책 만들기'. /구름마
▲ 귀촌 예술인들과 지역 할머니들이 함께하는 '나의 삶, 시 그림책 만들기'. /구름마

◇진정성 있는 기획 통해

구름마는 교육사업과 공공미술, 문화콘텐츠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하동 차밭을 걸으며 차 문화를 예술로 만나는 '다원예술순례' △마을꾸미기 △하동의 귀촌 예술인들이 강사로 참여한 '시골 할머니의 나의 삶, 시 그림책 만들기' 등이 주요한 프로그램이다.

전 실장은 문화콘텐츠 발굴의 하나로 작년 다원예술순례를 선보였다. 참가자들은 한반도에서 처음 차를 심었던 차 시배지와 하동에서만 볼 수 있는 가파른 야생차밭,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정금리 차밭 등을 삼삼오오 걸었다. 차밭길 투어 후에는 차문화와 연관된 인물들이 전하는 짧은 모노극, 지역 예술가의 공연 등이 이어졌다. 반응이 좋았다.

전 실장은 다원예술순례가 나온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화기획을 하려면 그 지역에 대한 조사가 가장 기본이며 반년 이상을 살아봐야 한다. 그게 전제가 되다 보면 문화인류학자처럼 반은 현장에 참여한 상태이지만 또 다른 한편은 객관성을 가지는 참여관찰자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역민에겐 너무 익숙해서 안 보이는 매력포인트, 자원을 포착하게 되는데 그게 작년에 첫선을 보인 다원예술순례다. 하동은 야생차밭이라는 훌륭한 경관자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역민에겐 그냥 생산지였다. 그 부딪치는 지점을 잘 찾아냈던 거 같다."

구름마는 작년 그림을 제대로 그려보지 않은 어르신, 글을 쓰는 것이 낯선 어르신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물을 그림책으로 펴냈다. 악양면 정동마을과 적량면 상우마을, 진교면 노인회분회, 화개면 상덕마을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하동의 전설이 담긴 옛이야기 그림책 2권과 자신의 인생이 담긴 시그림책 1권을 출간했고 올해 4월 '하동 할머니 그림책'전을 열었다.

이 대표는 강사로 참여했다. 그는 "지역과 동떨어진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제로 지역에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 진정성을 담은 기획을 하고 싶었다"며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 교육은 그게 잘 녹아든 결과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 개인적으로 보람도 컸다. "글을 쓰는 것도 자신 없어 하셨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낯설어 처음에는 어려워했다. 하지만 말로는 못하겠다 하시면서도 막상 시작하면 너무나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 하동차밭을 걸으며 차 문화를 예술로 만나는 '다원예술순례. /구름마
▲ 하동차밭을 걸으며 차 문화를 예술로 만나는 '다원예술순례. /구름마
▲ 그림책 작가들이 김밥을 주제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 전시. /김민지 기자
▲ 그림책 작가들이 김밥을 주제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 전시. /김민지 기자

◇좋은 문화 공유하는 장 되고파

구름마 조합원이 외부인이다 보니 힘든 점도 있었다. 양 이사는 "마을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노인정에 가서 청소도 하고 소주 한 상자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지만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완전히 녹아든 거 같지는 않다.(웃음) 아직도 숙제이긴 한데, 지역민과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회의감도 있었다. 이 대표는 "악양생활문화센터를 수탁 운영하면서 아이들 놀이공간으로, 책도 보고 그림도 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홍보 부족인 지 관객이 너무 안 오니까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하더라. 그래서 구성원들과 머리를 다시 맞댔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이 지역에 와서 진짜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왜 동력이 부족한지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녹여낸 기획을 다시 만들었다.

우리가 즐거우면 동력이 되고 우리가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이 구성원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이 대표는 "하동에 화가, 사진작가 등 예술가 1세대, 다양한 예술단체가 있다"며 "우린 그런 예술가, 지역민과 함께 좋은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장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 실장은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다원예술순례를 계기로 지역민이 차문화해설사로 참여하는 차잎길이야기꾼 양성과정이 생겼고 이들이 마을기업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직접 수익을 창출하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이런 움직임이 생긴다는 것은 지속성의 확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신나는 예술여행 섬진강 200리에 참여한 아이들. /구름마
▲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신나는 예술여행 섬진강 200리에 참여한 아이들. /구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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