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 적,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짐승은 단연 호랑이였다. 그 다음이 여우·늑대였다. '담비'는 그 순위에서는 빠졌지만 상당히 호기심을 발하게 하는 짐승으로 다가왔다. '호랑이 잡는 담비', 이것이 담비에 대한 전설이었다.

나는 당시 어느 어르신에게 '담비가 어떻게 호랑이를 잡는지' 물어보았다. 그 답은 '담비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목덜미를 물어서 죽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담비가 무척 무섭고 사나운 동물이라 생각했다. 발톱은 길고 예리하며 이빨은 송곳처럼 길고 날카로운 동물로 추측했다. 그 뒤로 담비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늘 궁금해 하며 수십 년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십수 년 전 처음으로 담비 모습을 TV 화면에서 보았다. 그 모습은 예상과 달리 귀여운 애완동물과 같았고, 전혀 호랑이를 잡을 짐승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담비를 내 과수원에서 상면했다. 내가 서있는 지점에서 불과 1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담비 3마리가 마른 수풀을 헤집고 다니며 유연하고 민첩한 몸놀림으로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머리는 삼각형 회색이었고, 몸통에는 큼지막한 노란색 무늬가 있었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 정신없이 이놈들을 바라 봤다. 담비 3마리는 그렇게 5분가량 그 주위를 헤집고 다니다 사라졌다.

내 과수원은 진주 도심에서 차로 불과 10~20분 거리다. 어떻게 이런 곳에 담비가 나타났을까? 어쩌면 담비가 나타나서 선물을 주고 간 것일까? 해마다 봄철이면 산돼지가 구덩이를 여기저기 파놓고, 고라니는 어린 새싹을 훑어 먹는다. 그런데 올해는 산돼지·고라니 흔적이 없었다. 이것이 담비 출현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담비가 반갑고 고맙다.

담비를 보고 나니 또 다른 토종 짐승인 여우가 생각난다. 담비·여우가 사람을 해쳤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단지 여우가 닭이나 오리를 훔쳤다는 얘기는 어릴 적 많이 들었다. 그 정도 도둑질이야 애교로 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토종 여우를 볼 날이 기다려진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세수한다 멋쟁이 밥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어릴 적 수없이 불렀던 놀이 동요를 조용히 불러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