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원폭·창원민간인학살
피해자 구술 채록 바탕으로
스토리 콘텐츠 생산 몰두
경남문예진흥원 사업 선정
제작 지원·사진전도 계획

오는 6일 합천에서 74주년 원폭피해자위령제가 열린다. 황라겸(31) 소셜벤처 '인스토리' 대표는 지난해부터 합천과 창원을 오가며 합천원폭과 창원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을 만나 구술 증언을 채록하고 그들을 알리는 활동을 한다.

그는 구술 채록을 바탕으로 만화·소설·스토리 영상 등 다양한 웹 콘텐츠를 생산한다. 유튜브 채널 '라겸TV'도 운영한다. 공대를 졸업한 그가 숨겨진 역사 속 피해자를 알리고 역사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 황라겸 대표가 원폭 피해자를 기억하고자 만든 굿즈(에코백)를 들고 있는 모습. /김민지 기자
▲ 황라겸 대표가 원폭 피해자를 기억하고자 만든 굿즈(에코백)를 들고 있는 모습. /김민지 기자

-역사를 전공한 줄 알았다.

"어릴 적 꿈이 만화가였지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포기했다.(웃음) 공대에 입학해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박혁문 작가의 <주몽>을 재밌게 읽고 역사를 좀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2016년 9월 창원대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해 작년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스토리를 만들게 된 계기와 그 안에 숨겨진 뜻이 궁금하다.

"대학원 때 우연히 강의실을 지나가다가 합천원폭피해자 관련 학회가 열리는 걸 알았다. 참관만 하고 나오는데 일본 NHK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학생이 저밖에 없는 걸 안 기자는 '원폭피해자에 대해 한국인의 관심이 적은 것 같다'며 그 이유가 뭔지 물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나?

"한국에는 원폭피해 관련 콘텐츠가 많지 않고 미디어의 관심이 적어서 그런 거 같다고 당시 말했다. 그리고 반년 뒤 창원대 경남학연구센터 연구원으로 합천군 원자폭탄 피해자 구술증언 조사사업에 참여하면서 원폭피해자를 만났고 인터뷰했다. 원폭피해에 대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리의 문제라고 느끼는 계기가 됐다. 대학원 수료 후 사회적기업가 육성 과정에 지원했고 인스토리를 만들었다. 인스토리는 사람(人)의 이야기(Story)가 담겨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역사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올해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차세대 유망예술인에 선정돼 합천원폭피해자 스토리 영상을 제작하고 인물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 황라겸 대표의 영상 기록화 장면./인스토리
▲ 황라겸 대표의 영상 기록화 장면./인스토리

태평양전쟁에 불을 지핀 일본은 1945년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원폭이 투하되는 비극을 맞았다. 일제강점기 강제로 노역에 동원되거나 생활고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약 10만 명(한국원폭피해자협회 자료 추정)이 피폭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회원 수는 2261명. 그들의 평균 연령은 약 80세다. 합천지부 회원 수는 573명으로 이 중 96명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입주했다. 원폭 피해자들은 질병과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부가 발표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존자 4명 중 1명(약 23%)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절반(51%)은 현재 건강이 나쁘다고 답했다.

-합천지역 원폭피해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지난해 말 합천원폭피해자 구슬증언 보고서를 냈다. 한 달 넘게 27명을 인터뷰했고 영상을 찍었다. 집이 창원인데 그땐 승용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합천을 왔다갔다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카메라 2대와 노트북을 챙기고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도착하면 9시쯤이었다. 오전에 1~2명, 오후에 1~2명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이대가 80~90대로 치아가 없어 발음이 뭉개지는 분들도 많다. 또 연로하다 보니 육체적 고통은 물론 원폭 후유증, 이유 없는 고통,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이 많았다. 인터뷰하기 전 그분들에게 감정이입을 할까 봐 걱정이 됐다. 오히려 그분에게 피해가 될까 봐…. 그런데 어르신들이 너무 밝고 저를 잘 챙겨주셨다."

-인터뷰를 거절한 분도 있나.

"있다. 자식들이 싫어한다고. 원폭피해자는 2세를 넘어 3세까지도 피폭 후유증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을 자녀가 꺼리신다고 했다. 그러면 설득을 안 했다. 상처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김한동 피해자 1세 인터뷰를 봤다. 인터뷰 도중 할아버지가 울먹거리며 '차마 말을 못해요. 원폭은 실제 경험을 한 사람이 알지. 말로는 못합니다. 절대'라며 손을 부들부들 떨자 라겸 씨가 손을 잡아주는 장면이 있더라.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인터뷰한 분들을 유튜브에 차례로 올리려고 한다. 사실 구술증언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이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그 말만 들어도 굉장히 힘이 된다.(웃음) '내가 말할 데가 어디 있노' 이러면서 가슴속 응어리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원폭피해자 1세대는 한국에 돌아온 후 5년 만에 한국전쟁을 겪은 분들로 트라우마가 크다. 참혹한 길거리 풍경, 널브러진 시체, 썩는 냄새…. 2세대는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유전병, 스트레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병 때문에 불안함이 많다. 합천 원폭피해자들은 그래도 말할 때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없는데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은 '빨갱이' 콤플렉스 때문에 민감하게 받아들이더라. 구술 안 하려고."

-그래서 어떻게 했나?

"창원지역 민간인학살 관련 조사를 하다가 창원민간인학살유족회 회장을 알게 돼 부탁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6명을 직접 뵙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중 3명만 진행했다."

▲ 원폭피해자 스토리 영상 시사회 모습. /인스토리
▲ 원폭피해자 스토리 영상 시사회 모습. /인스토리

황 대표는 지난해 박정희 정권의 인권유린 실체를 담은 '서산개척단'을 소재로 네이버웹툰에 6회가량 연재를 했다.(아직 완결은 되지 않았다) 직접 주민들을 인터뷰해 시나리오를 쓰고 만화를 그렸다.

그는 앞으로 합천원폭 기록물을 토대로 웹툰을 만들 계획이다.

황 대표는 "구술증언집이나 보고서는 일반인들이 구하기도 어렵고 사투리가 심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읽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고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이런 활동을 하느냐'다. 그냥 하다 보니까 하게 됐다. 그분(원폭·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을 만나는 게 좋았고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를 쓰고 웹툰을 그리게 됐다. 이젠 끊을 수 없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