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활용해 인류 없는 지구 담은 '떠나간 후'전
그림·식물에 작가의 생명력 투영한 '이파리'전

우연하게도 생명력을 주제로 한 전시 둘을 잇달아 보게 됐다. 하나는 인간을 배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포함한 것이다. 앞의 전시에서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이란 인간 문명에서 인공적인 것을 뺀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반성을 했다. 두 번째 전시에는 반대로 어쩌면 자연이란 인간의 인위적인 것까지 포함한 그 세계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떤 방식이든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전시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가볼 만한 것 같다.

◇인간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을 보라 = 10년도 더 전에 나온 <인류 멸망 그 후>(데이비드 브리스 감독, 2008, 미국)란 장편 다큐멘터리가 있다. 인류가 사라진 후 며칠, 몇 주, 몇 달, 몇 년, 몇백 년 후 지구의 변화를 각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다. 자연 자체의 놀라운 생명력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던져준다.

비슷한 느낌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작은 전시공간 '한점'에서 진행되는 안시형 작가의 작품에서 받았다.

안 작가는 밀양에서 살면서 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데, 원래 돌 조각을 하다가 최근 10년은 생활주변 다양한 오브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 창원 사파동 한점 갤러리에서 열리는 안시형 작가 전시 중 오래된 밥통 안에서 자라는 이끼. /이서후 기자
▲ 창원 사파동 한점 갤러리에서 열리는 안시형 작가 전시 중 오래된 밥통 안에서 자라는 이끼. /이서후 기자

이번 전시에서 그는 30∼40년은 썼음 직한 밥통과 청소기, 폐차장에서 발견한 녹슨 자동차 부품에다 이끼를 키우고 이끼 위에 상징적으로 조그만 물건들을 올려 뒀다. 이끼는 실제로 살아 있는 것이다. 조그만 물건 중에는 동물 인형도 있고, 길에서 주운 어느 짐승의 뼈나 유명한 캐릭터 인형도 있다.

'떠나간 후'라는 제목에서 언뜻 느낌이 온다. 오래된 청소기나 밥통, 낡은 자동차 부품에서 인간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그 위에 자라는 이끼와 이끼 위 조그만 오브제들은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떠나간 후란 제목은 결국 '인간이 떠나간 후'란 뜻이다.

<인류 멸망 그 후>가 상상력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안 작가의 작품은 실제를 바탕으로 비슷한 개념을 표현했다.

▲ 창원 사파동 한점 갤러리에서 열리는 안시형 작가 전시 중 오래된 청소기 안에서 자라는 이끼. /이서후 기자
▲ 창원 사파동 한점 갤러리에서 열리는 안시형 작가 전시 중 오래된 청소기 안에서 자라는 이끼. /이서후 기자

안 작가가 이런 작품을 만든 이유를 잘 보여주는 게 이끼 작품들 위에 걸려 있는 세계 지도다. 어느 날 조카가 낙서하는 걸 보고 그걸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가 보기에 지금 인간이 이 지구에 하고 있는 일 역시 마구 헝클어진 조카의 낙서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한점에서 올해 진행되는 '삼라(森羅)' 연속 전시 중 두 번째 전시다.

전시는 10월 13일까지다. 관람은 무료고 매주 금, 토, 일 오후 1시에서 7시 사이에 볼 수 있다. 문의 김나리 독립 큐레이터 010-9876-3695.

▲ 남해 시문 돌창고 이파리전. 그림과 식물이 함께 배치돼 있다. /이서후 기자
▲ 남해 시문 돌창고 이파리전. 그림과 식물이 함께 배치돼 있다. /이서후 기자

◇인간 삶의 의지 역시 생명력이다 = 작품과 전시장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전시가 또 있을까. 남해 시문 돌창고에서 진행되는 '이파리'전. 서울에서 활동하며 오랫동안 식물을 주제로 작업하는 정인혜 작가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전시는 작품만 보면 안 된다. 작품과 작품이 담긴 전시장 전부를 함께 봐야 한다.

남해 돌창고 특유의 질감이 작가의 작품과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장 내부에 일부러 식물을 심기도 한 까닭이다.

식물은 화초 전문가와 조경 전문가가 직접 참여해 심었다.

"그림도 하나의 식물이라고,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봤어요. 그래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림과 식물의 구분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승용 아트디렉터의 말이다. 그는 전시 작가 섭외 과정에서 정 작가에게 어떤 생명력을 느꼈다고 했다.

"보통 작가를 섭외한 후 직접 만나러 가면 계속 작가로 사실 거예요? 라는 질문을 해요. 정 작가는 서울 해방촌에 있는 낡은 작업실에서 힘겹게 살면서도 계속 작업을 할 생각이더라고요. 느리고 오랜 시간을 버티며 꾸준히 작업하는 그 모습에서 저는 생명력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것이 남해 돌창고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생각했고요."

전시는 8월 11일까지. 관람료는 3000원,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목요일은 휴관이다. 문의 남해 돌창고 프로젝트 055-867-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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