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설치해 관료 개혁
젊은인재 모아 직접 강의
'왕은 물이요 신하는 고기'
부용지·어수문 직선 배치

◇정조의 개혁

1752년 3월 10일 정조가 즉위했다. 군주가 중심이었던 조선에서 정조의 등장은 근대로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조선시대는 크게 임진왜란 전과 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의 파괴력은 조선사회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질서를 바꿔놓았다. 전쟁에 관여된 명나라는 멸망하고 청이 등장했고,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았다. 기존 질서의 한계가 드러났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체계가 바뀐 것이다.

조선은 어땠는가? 비극적인 전란을 수습하려 세자의 신분으로 전장을 누비고 왕이 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광해는 인조에 의해 폐위되었다. 변화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동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병자호란으로 나타났고 인조는 청태종의 발밑에 머리를 아홉 번 찍었다.

기회는 한 번 더 찾아왔다. 영조와 정조로 이어지는 시절에는 실학을 비롯한 신문물에 대한 이해의 노력과 함께 기존 질서에 대한 반성과 대안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1800년 석연치 않은 정조의 죽음과 함께 이 싹들은 사라지고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세도정치기를 맞아 조선은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다. 이 무렵 서양에서는 자원을 착취하고 급증한 생산력을 통해 만든 물건들을 비싸게 팔 식민지를 무력으로 쟁탈하기 위한 다툼이 한창이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조선이 전적으로 의지했던 청나라마저도 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했고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조선의 통치권력은 또다시 반동을 택했다.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일성과 함께 즉위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복권시키고 그 묘(융릉)를 지금의 수원 인근에 마련했다. 그리고 이 조치를 근거로 해서 화성에 왕의 행차용 궁을 만들면서 큰 성을 축조했다.

화성(華城)이다. 이 과정에서 서양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백성들을 일방적으로 동원한 것이 아니라 임금을 지불하는 근대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통치 장소에 변화를 줘 새로운 정책 실현에 힘을 싣고자 한 것이다. 이런 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장용영을 만들었고 정책적으로 규장각을 만들었다.

이런 개혁조치들 중 가장 먼저 취한 것은 규장각의 설치였다. 정조는 3월에 즉위했는데 그해 9월 규장각을 완성했다. 규(奎)는 별자리의 이름이다. 동양의 세계관에는 28개의 별자리가 있고, 그중 문(文)을 관장하는 별자리가 규이다. 장(章)은 '문장', '밝음' 이라는 뜻이다. 규장은 겉으로는 하늘에 있는 밝은 문장이고 실상은 왕의 글을 말한다. 그래서 규장각은 왕의 친필이나 글 등을 모으는 곳으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정조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이곳에 인재들을 모으고 각종 혁신정책을 입안하게 했다. 규장각에 재능있는 젊은 문신들을 배치해 교육했다. 이들에게는 매월 정조가 직접 강의하고 시험도 보았다. 요새 쓰는 용어로 투트랙으로 교육뿐 아니라 스킨십까지 병행해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 규장각 전경. 아래쪽 연못이 부용지이고, 중간에 있는 어수문,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2층 건물이 규장각이다. 원래 1층은 규장각, 2층은 주합루라는 현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2층 현판만 남아 있다. 자연과 조화롭게 자리 잡은 창덕궁의 다른 전각들과는 달리 강한 중축선을 가진 배치가 특징적이다.  /최형균
▲ 규장각 전경. 아래쪽 연못이 부용지이고, 중간에 있는 어수문, 그리고 가장 위에 있는 2층 건물이 규장각이다. 원래 1층은 규장각, 2층은 주합루라는 현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2층 현판만 남아 있다. 자연과 조화롭게 자리 잡은 창덕궁의 다른 전각들과는 달리 강한 중축선을 가진 배치가 특징적이다. /최형균

◇규장각

이 규장각은 지금도 창덕궁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창덕궁 후원으로 넘어가면 처음 만나는 멋진 곳이다. 관람객을 위한 가이드북에는 부용지(芙蓉池) 일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부용지라는 큰 연못이 있어 이렇게 불린다. 부용지는 천원지방의 원리에 맞게 평면을 네모나게 만들었고 가운데 동그란 섬을 만들었다.

연못 남쪽에 멋진 정자가 하나 있는데 당연히 부용정이다. 이 정자의 반대쪽 언덕에 있는 큰 건물이 규장각이다. 규장각과 부용지 사이에는 작지만 화려한 문이 하나 있고 그 주위로 나지막한 생나무 담장이 연못과 규장각을 나누고 있다. 문의 이름은 어수문(魚水門)이다. 규장각은 2층 누각이다. 1층은 규장각, 2층은 주합루(宙合樓)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지금 규장각 현판은 없어지고 주합루만 남아 있다. 주합은 우주와 하나로 합쳐진다는 뜻이다.

▲ 춘당대에서 바라본 영화당.  /최형균
▲ 춘당대에서 바라본 영화당. /최형균

이게 다가 아니다. 부용지 동쪽으로 멋진 건물 한 채가 있다. 영화당(暎花堂)이다. 부용지를 뒤로하고 동쪽을 바라보는 건물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다. 이곳을 춘당대(春塘臺)라고 한다. 지금은 창경궁과 창덕궁을 구분하는 담장이 이 춘당대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지만, 원래는 창경궁 춘당지까지 하나의 구역으로 넓게 펼쳐진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과거를 보거나 군사훈련을 했다. 과거(科擧)를 살펴보자. 과거는 객관적으로 유교적 학식을 가진 관리를 등용하기 위한 제도였다. 등용(騰踊)은 날아올라 용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관리가 되는 관문을 등용문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과거는 3년에 한 번씩 보는 식년시가 기본이었다. 하지만 여러 특별시험이 있었고 그중 유명한 하나가 춘당대시(春塘臺試)이다. 국가적으로 경사가 있을 때 왕이 직접 춘당대에 나가서 관장하는 시험이다. 지금 말한 춘당대가 바로 여기다. 춘당대는 춘향전에도 나온다. 이몽룡이 과거시험을 보러 춘당대에 왔고 그때 시제가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이었다. '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뜻인데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문구다. 사실 이곳은 구중궁궐 한가운데 있는 곳이어서 과거를 보기 위한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문과는 여러 단계를 거쳐 급제자를 배출하는데 식년시의 경우 초시 합격자 정원만 해도 240명이었다. 그래서 춘당대에서는 주로 여러 단계를 거치고 거쳐 마지막 남은 33명을 놓고 시험을 치렀다. 이들은 모두 시험에는 합격한 사람들이고(급제) 정해야 할 것은 이들의 등수였다. 이 33명 중 일등을 장원이라고 했다. 장원은 바로 종 6품으로 임명되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그리고 승진에도 가점이 있었다. 우리의 이몽룡은 이 시험에서 일등을 차지한 것이다.

◇어수문, 등용문

지금은 부용지, 영화당, 춘당대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지만 동궐도를 보면 영화당 좌우에 담이 있어 춘당대와 규장각을 구분하고 있었다. 잠시 상상을 해보자. 우리는 춘당대에 시험을 치를 준비하고 앉아 있다. 영화당이 눈 앞에 보인다. 영화당에는 임금님이 친히 나와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영화당 너머를 바라보니 멋진 규장각이 보인다.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저기로 갈 수 있는 것이다.

▲ 부용지 면석에 새겨진 물고기 조각.  /최형균
▲ 부용지 면석에 새겨진 물고기 조각. /최형균

하지만 단번에 규장각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일단 과거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우선 부용지를 먼저 거쳐야 했다. 이 부용지 속에서 활동하려면 우선 물고기가 되어야 했다. 부용지로 가보자. 부용지 모서리 한쪽에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왜 하필이면 물고기를 새겼을까? 힌트는 부용지 어수문(魚水門)에 있다. 물은 왕을 상징하고 신하는 물고기를 뜻한다. 이 공간의 설계자 정조는 말한다 "물고기들아 내 품에서 마음껏 뜻을 펼치거라!"

▲ 어수문 전경. 문 기둥 사이 지붕에 용을 새겨 등용문의 의미를 나타냈다.  /최형균
▲ 어수문 전경. 문 기둥 사이 지붕에 용을 새겨 등용문의 의미를 나타냈다. /최형균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 규장각에 닿지 못했다. 문 앞에서만 노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문은 넘거나 건너가야만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고기보다 더욱 빼어난 존재, 용으로 탈바꿈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어수문은 등용문이 된다. 그래서 아래쪽에 부용지를 만들고 이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규장각, 주합루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창덕궁 다른 공간에서는 활용하지 않았던 부용정-부용지-어수문-주합루로 이어지는 강한 축선을 만들었다. 다시 정조는 말한다. "물고기들아 내 품을 넘어 하늘로 날아올라라!"

※이 기획은 LH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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